우애 깊은 형제, 화목한 가족, 다정한 연인.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감춰진 갈등이 없을까. 한없이 서로를 신뢰하고 아껴줄 것만 같던 사람들도 어떤 계기로 인해 관계의 균열이 드러나면 그 틈에서 질투, 반목, 미움 등 온갖 상념이 배어나온다. 2006 칸 영화제 진출작인 영화 ‘유레루’에서 그 계기는 흔들다리가 제공한다. ‘흔들리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흔들다리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흔들리는 형제간의 우애와 그들간의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생 타케루(오다기리 죠)와 형 미노루(카가와 데루유키). 잘 나가는 패션사진작가인 동생은 잘생겼고 자유분방하며 소유욕이 강한 사람. 반면 아버지의 주유소에서 얹혀사는 형은 용기 없고 소심한 사람만 좋은 남자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두 형제는 고향에서 재회하고 우애를 나눈다. 이때 그들 사이엔 어떤 흔들림도 없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타케루의 동창생이자 주유소 종업원 치에코(마키 요코)와 함께 떠난 계곡 여행을 통해 급격히 붕괴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숲속 깊숙히 들어간 타케루가 계곡 위에 걸린 흔들다리에서 실랑이를 하는 치에코와 미노루의 모습을 먼 발치서 보게 되고 뒤이어 치에코의 추락사를 목격하게 되는 것. 이후 치에코의 살인범으로 지목된 미노루는 재판과정에서 타케루에 대한 숨겨진 시기심, 질투심을 하나씩 노출한다. 사고가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믿던 타케루도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위를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형제관계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류감독 특유의 절묘한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두 형제 마음 속 깊은 곳 조그만 변화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감독은 가족이라는 불변일 것만 같은 관계의 균열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들간의 관계 전체를 투영한다. 그렇게 영화는 작은 두 사람 사이 사건을 통해 인간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를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 주목해 봐야 할 사람이 카가와 테루유키. 그는 사람좋고 소심한 남자에서 점점 악마성을 드러내는 미노루를 절묘하게 묘사한다. ‘박치기!’, ‘메종 드 히미코’등을 통해 국내에서의 티케팅 파워들 입증한 오다기리 죠는 이번 영화에서도 예의 그 도회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