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심권에서 영업해온 택시기사 김성환(가명·48)씨는 요즘 식사를 제때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대목인 점심시간이나 직장인 퇴근시간, 자정 무렵을 놓치면 반나절 이상 시내를 쏘다녀도 승객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회사에 매일 갖다 바쳐야 하는 할당액(사납금)을 못 채우는 경우가 잦아졌을 정도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요즘에는 대목 시간에도 택시 타려는 분이 크게 줄었다"며 "장거리 승객을 놓치면 영업을 공치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남몰래 소액사채를 융통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내수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택시기사들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세월호 이후 유독 심해졌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 이들을 최일선에서 맞이하는 접객업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죽을 맛이다. 주로 택시기사, 요식업자, 재래시장 및 동네골목 상인과 같은 서민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비스업은 서민 일자리의 텃밭이니 서비스업 경기악화는 그대로 서민 가장들의 고용불안·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소비가 하반기 들어 살아날 것으로 낙관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지표경기가 잠재성장률(3% 후반)에 근접해도 체감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게 문제다. 서울경제신문이 24~25일 국내 학계·산업계·연구기관의 경제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가 '하반기에도 내수부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대형 카드사 임원은 "세월호 침몰에 따른 회원들의 카드 사용액 감소세가 6월 들어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소비심리가 워낙 처져 있어 하반기에도 실적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경제성장의 밀알인 가계 소비심리가 위축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계부채(42.9%)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고용불안(20.0%), 노후대비 불안감(20.0%) 등도 그 뒤를 이었다. 권지윤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데 비해 평균 퇴직 시점은 늦춰지지 않아 남은 여생을 대비해 소득의 지출을 미루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가 오는 7월에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운용 방안은 빚·노후·고용에 대한 가계의 불안심리를 덜어 얼어붙은 내수를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중 가계부채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이자비용 증가를 억제하는 쪽에 중점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탄력적인 금리정책과 더불어 장기고정금리의 분할상환대출로의 환승을 한층 서둘러 유인해야 가계부채 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 대형 시중은행 임원은 "아직도 주택담보대출 등을 신청하는 고객의 대다수가 고정금리보다는 변동금리, 분할상환보다는 일시상환을 선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고정금리나 분할상환 상품이 더 유리하다고 설득할 만한 근거를 딱히 찾기 어렵다"며 "은행의 노력도 뒤따라야겠지만 정부도 금융사들이 변동금리보다 유리한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정책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금리 수준, 수수료 체계, 조세감면, 영업규제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인센티브와 디센티브를 이용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후대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금체계, 저축상품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특히 연금체계의 경우 1단계인 공적연금(국민연금 등)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2단계인 기업연금(퇴직연금 등)의 가입률을 높이며, 3단계인 개인연금(연금저축계좌)의 신뢰성과 수익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게 연금전문가들의 공론이다.
양인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현행 공적연금체계는 소상공인과 전업주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해당 계층의 가입을 유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들 사각지대 계층을 연금가입을 유도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연금의 경우 퇴직일시금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더 줄이고 대신 기업연금에 대한 세제혜택 등을 보다 넓히는 방식으로 가입유도를 꾀해야 한다고 금융권은 제언한다. 아울러 개인연금의 경우 중소기업 등에서 일하는 저소득 근로자들에게 제한적이나마 보험료의 일부를 정부가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가입을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른바 '한국형 리스터연금' 도입론이다.
고용불안과 관련해서는 단기적으로 복지 부문 등 생산적 서비스산업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재정 일자리를 늘리되 중장기적으로는론 관련 부문의 규제를 완화해 민간 중심의 일자리 확충을 유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재취업에 대한 금융·재정·상담·정보지원을 강화하고 임금피크제 확산 등을 통해 실질적인 정년연장을 독려하는 등의 내용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실리기를 경제전문가들은 기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