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일정 기간 자본금과 전문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영업 실적이 없으면서도 연명하는 '좀비'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를 직권으로 퇴출할 계획이다. 주식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가운데 경쟁력이 없는 부실 운용사와 자문사들이 난립해 어지럽혀진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행정 제제를 통해 업계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법적 요건에 미달하는 운용사와 자문사에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직권으로 라이선스를 취소하는 등 강도 높은 행정제재를 부과할 방침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부실 우려가 있는 운용사와 자문사에 대한 행정제재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시정명령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고 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직권으로 영업 인가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법적 요건을 갖춰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실제 영업은 하지 않고 좀비처럼 죽었다가도 다시 영업하는 업체를 집중적으로 단속해 퇴출하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운용사와 자문사의 법적 요건은 자기자본 70% 이상 유지와 최소한의 전문인력 유지다. 전문인력은 자산운영업은 8명, 투자일임은 2명, 부동산 전문은 3명, 투자자문은 1명 등이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자격 요건 미달 운용사와 자문사에 대해 영업정지 등의 처분만 내리고 라이선스는 폐지하지 않아 재기할 수 있는 길은 남겨놓았다.
하지만 실제 영업은 하지 않으면서 라이선스를 앞세워 근근이 먹고 사는 운용사와 자문사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혀 업계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문제가 대두됐다.
특히 자산운용업계의 경우 중소형사에 대한 시장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대형사 위주로 투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85개사가 영업을 하는 자산운용업계의 경우 상위 10개사의 영업이익이 전체 시장의 85%를 차지할 정도다. 자산운용사 세 곳 중 한 곳은 적자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3·4분기(10~12월) 기준으로 적자를 낸 자산운용사는 26개사(국내 18·외국계 8)로 전체의 31%나 된다"고 말했다.
최근 6개월간 계약액과 수탁액이 없는 자산운용사는 30여곳에 이른다. 투자자문업계의 경우 자기 고유 재산이나 이해관계인, 특수관계인 재산을 이용해 영업의 외형만 갖추고 실제로 영업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 운용사나 자문사의 경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전문인력들이 실제 업무를 하지 않고 다른 곳에 취직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영업 자체를 하지 않아 업계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이런 점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도 시장 정화작업에 속도를 낼 태세다. 부실 운용사와 자문사 퇴출을 위한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금감원은 지난달부터 158개 투자자문사에 대해 일제히 검사를 진행하며 법적 자격 요건과 정상 영업행위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문사 16개 정도가 시정명령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85개 자산운용사에 대한 검사도 곧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정명령은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와 자문사의 라이선스를 취소할 수 있는 발판"이라며 "앞으로 간판만 내걸고 영업을 똑바로 하지 않는 업체들은 시장에 남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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