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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부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50% 미만으로 유지해야 하는 ‘펀드 판매 50%룰’이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시행이 예고돼 왔지만 정작 50%룰이 시작된 지 일주일 간 판매사창구에서 ‘계열사 판매 유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여의도 주요 은행ㆍ증권사 등 5개 판매사를 다니며 펀드 상담을 받아본 결과다.
미스터리쇼핑 대상은 은행 3곳(A은행, B은행, C은행)과 증권사 2곳(D증권, E증권) 등 모두 여의도에서 규모가 큰 지점으로 지난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됐다. 모두 대놓고 자사 계열사의 펀드를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타사 펀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투자자가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펀드는 결국 한정돼 있었다.
A은행의 경우 계열 A자산운용과 인지도가 낮은 중소형 운용사의 펀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A자산운용 펀드를 선택할 가능성을 높였다. 시중에서 인기 있는 경쟁사의 펀드도 판매 중이었지만 이 펀드와 A운용사의 상품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중소형 운용사의 상품을 비교 제시해 A운용의 펀드를 돋보이게 만든 것이다.
기자는 투자자 성향을 알아보는 테스트를 받은 후 위험중립형이 나와 채권혼합형 펀드 5개를 추천받았다. 추천 받은 펀드는 A운용 펀드(연초 후 수익률 0.96%), F운용 펀드(1.46%), G운용 펀드(0.63%) 등이었다. A운용의 연초 후 수익률은 국내 설정된 256개 채권혼합형 펀드 중 76위였다. 경쟁 상대인 B자산운용ㆍE자산운용 등의 펀드 수익률이 더 높은 것도 많았지만 펀드 상담사는 A자산운용의 펀드를 추천한 셈이다.
중소운용사의 펀드를 추천했다는 점에서 이번 50%룰이 중소형사들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규모나 인지도의 비교로 고객들이 대형사의 펀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대형사의 독주체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판매사나 운용사들은 “더 이상 계열사 펀드만 몰아 팔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형 판매사를 계열사로 둔 한 운용사 관계자는 “판매직원은 펀드만 판매하는 게 아니고 펀드ㆍ카드ㆍ보험 등 모두를 맡고 있다”며 “이 때문에 계열 운용사에서 정기적으로 펀드 교육이 나오면 계열 운용사 펀드에 대해 더 잘 알 수밖에 없어 계열사 펀드 위주로 추천해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매사 직원은 펀드 판매 할당량만 있을 뿐 계열사 펀드를 판다고 우대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계열사 펀드만 추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위험성향을 바탕으로 B은행과 D증권에 펀드 추천을 의뢰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상품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펀드가 1~2순위 추천대상이었으며 4순위까지 추천펀드가 모두 달랐다. 다만 C은행은 자산운용사의 규모가 작아 계열사 펀드를 추천하지 않았고 계열운용사 규모가 큰 판매사 중 E증권만이 타 계열사 펀드를 1순위 펀드로 적극 추천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ㆍ연금실장은 “계열사 신규 펀드 판매 비중이 50% 미만인 판매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이번 50%룰이 아직까지는 큰 문제로 와 닿지 않아 여전히 계열사 상품을 추천하는 관행이 남아있을 수는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공정경쟁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 된 이상 판매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신의성실이 더해져야 50%룰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간 한시 적용되는 50%룰은 펀드슈퍼마켓 도입 등 자율경쟁으로 가기 위한 초기 작업이자 계도 기간인 만큼 강제성보다는 자발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송 실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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