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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업계의 거목인 박문덕(64·사진) 하이트진로 회장이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퇴 배경에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회사측은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강화하려는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주류업계에선 '3세 경영체제로 전환하려는 수순'이라거나 '제2의 하이트 신화를 구상하기 위한 일보 후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박 회장은 지난 21일 열린 하이트진로 주주총회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또 같은 날 열린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총에서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놨다.
하지만 업계에선 한창 업무에 매진할 60대 중반의 박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야인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건강도 문제 없다는 전언이다.
이에따라 3세 경영체제 전환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모습이다. 박 회장이 30대 중반인 장남 박태영 하이트진로 전무를 곧바로 경영 일선에 내세우기는 부담스러워 시간을 두고 '대표 사임→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승진 인사'란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얘기다.
한 주류업계 고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가 3세 경영체제로 전환한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미 중요한 결제는 장남인 박 전무가 하고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 신화'의 주역인 박 회장이 잠시 숨을 고르고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부친이 세운 크라운을 하이트로 사명을 바꾸고, 파격적 가격에 진로소주를 인수하는 등 박 회장이 결정적 순간마다 승부수를 던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하이트진로가 시장점유율에서 OB맥주에 4대 6으로 밀리고 있고, 롯데그룹이 맥주 시장에 진출하는 등 변수도 많아 박 회장이 전문경영인을 내세운 뒤 본인은 판세를 뒤엎을 회심의 카드를 선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평소 조용한 행보를 하는 박 회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맥주 업계 1위 탈환을 선언하며 직원들에게 '끝장 정신'을 강조한데다 하이트진로가 라거 맥주 리뉴얼, 신규 위스키 개발, 와인 부문 확대 등에 나서고 있어 박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이 단순 휴식을 위한 게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주류시장 한켠에서는 하이트진로가 밝힌 전문경영인 체제란 말 그대로 팍팍해진 주류시장 상황에 지친 박 회장이 스스로 경영에서 손을 떼는 아름다운 은퇴를 선택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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