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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9년 당시 개관을 앞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건물을 완성한 후 처음으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방문했다. 온 임직원이 긴장한 가운데 신 총괄회장은 뜬금없이 주문했다.
"복도의 천장을 깨시오."
담당 직원이 영문을 모른 채 천장을 부수자 신격호 회장은 뚫린 곳에 손전등을 비췄다. 방화 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신 총괄회장은 그제야 손전등을 넘기고 자리를 떴다.
아무 말도 않는 것이 곧 신 총괄회장의 칭찬이었다.
그는 롯데호텔 리뉴얼 공사를 진행하던 2001년 11월에도 갑작스레 공사 현장을 찾았다. 공사 현황을 둘러보고 안전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신 총괄회장은 이미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공사 현장의 근로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그룹이 호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모든 일을 도맡았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 경영실적이 악화된 '반도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업에 뛰어들게 됐다.
반도호텔을 헐기 전 신 총괄회장은 전 세계의 고급 호텔을 순회했다. 어떤 호텔을 지어야 할지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호텔업은 이익을 내기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에 일류 호텔이 없어 장래성이 있다고 봤다"며 "호텔업은 전혀 몰라서 세계의 일류 호텔을 다녀보고 공부한 뒤 일본의 데이코쿠호텔을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1890년 도쿄에 문을 연 데이코쿠호텔은 오랜 역사만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노련한 서비스 덕분에 내외국인 명사들이 많이 찾는다.
신 총괄회장의 예상대로 한국 최초의 대규모(지상 38층) 일류 호텔은 대박을 쳤다.
개관 초기 호텔 꼭대기에 마련된 전망대에는 휴일에 2,000명이 몰릴 만큼 인기가 좋았다.
롯데호텔은 현재도 국내 특급호텔 중 가장 시장점유율이 높다. 이어 2010년 첫 해외 호텔인 롯데호텔 모스크바를 열고 현재까지 해외에서 5개의 롯데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미국 맨해튼 중심부의 '더뉴욕팰리스' 호텔을 인수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 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호텔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호텔롯데의 매출 95%를 차지하는 면세점 사업이 관건이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그룹의 국적은 어디냐"는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음달 면세점 사업권 재입찰이 예정된 상황에서 '외국 기업에 면세점 사업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롯데가 이번 일로 호텔 사업에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기업 논란'을 진화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3일 입국하면서 "롯데는 매출 95%를 한국에서 내는 한국 기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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