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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의 교훈/정석화 미 시세로 스틸 사장(특별기고)
입력1997-04-29 00:00:00
수정
1997.04.29 00:00:00
정석화 기자
◎문어발 경영·기업주 독단·정경유착 끝은 “파멸”○기업인 근검절약을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인들로서 꼭 기억해야 할 격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의 돈을 쓰라」(Use Other’s Money)는 것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자기자본을 써서 성공한 기업은 성공이 아니며 팽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록 맨주먹이지만 창의력과 야심을 자본으로 성공해야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격언은 젊음과 지식을 유일한 재산으로 험난한 기업세계에 몸을 던지는 벤처 기업인에게나 적용되는 말이지, 정치권력과 결탁한 한보같은 기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같은 한 세대전과 같은 기업인을 우리 벤처 기업 엘리트들은 본받지 말아야 한다.
한보비리는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삽시간에 꿀꺽, 결국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5조원이 넘는 학비를 내고 위대한 교훈을 하나 배웠다. 「배움이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값진 것」이라는 교훈이다. 미국인들이 잘 쓰는 「I Learned Hard Way」가 바로 그런 뜻이다.
이번 한보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기업인 특히 남의 돈을 쓰는 기업인은 근검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돈을 꾸어 명목외의 낭비나 사업 다변화에 투자하면 사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1기업 1업종」의 전문화로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 이것만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수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과 GM이나 푸루어 대니얼 또는 일본의 도요타(풍전)를 비교해 보면 쉽게 대비가 된다. 몇세기를 단일 업종으로 헌신하다 사업이 잘안되면 비슷한 업종끼리 합병해서라도 지탱, 더 넓은 기술축적과 시장확대에 대처하고 있다. 한보는 하나도 어려운 것을 철강업외에도 러시아 가스 등 수많은 대형업종에 동시에 손을 댔으니 결과는 뻔했다.
이는 금융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은행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없는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거절하고 다른 은행을 알선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충분한 토의 절실
둘째로 우리는 한보철강과 같은 최신설비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할 경우에는 결코 기업주 한사람만의 의견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소위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의 개념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위원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과 의견을 총망라, 전부 열거하고 하나하나 공동 검토해야 한다.
안건이 많을수록 더 좋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절대로 서두르거나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또 절대로 개인 감정이나 권위를 휘두르는 일은 없어야 하고 참신한 창의력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이루어야 한다. 언뜻 보기에 프로젝트를 지연시키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셋째로 우리는 말로만 외치는 그릇된 관습과 풍토를 탈피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 큰 사태가 날 것이며 우리나라 경제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비참한 불행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이 약한 우리나라 기업들에 은행 커미션에다 정치인 자금과 떡값까지 뜯겨 나가면 무엇으로 외국기업과 경쟁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보가 낭비한 5조원으로 이 그릇된 관행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이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 경제풍토가 이룩된다면 우리는 대만이나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웃 일본 역시 고질적인 관습때문에 젊고 유능한 인재의 참신한 창의력이 억눌려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풍토위에서 새로운 가치공학의 이론을 적용할 수만 있다면 노동문제도, 경쟁력도, 창의력도 모두 해결되고 명실공히 일류국가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철강」 정상화 박차를
한보철강이 그렇게 비관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간 생산 2백만톤 규모의 박슬래브 공장과 철근공장은 생산성이 매우 높은 최신 설비며 우리나라 전체시장의 20% 정도까지 점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제1단지에 투자한 1조5천억원도 그 설비규모와 생산성에 비추어 무리한 액수는 아니라고 본다. 10년전 비슷한 박슬래브 공장을 사상 처음으로 건설한 미국 뉴코어 철강의 크로포즈빌공장에는 3억달러가 소요됐다. 한보철강의 경우 생산규모가 뉴코어 공장보다 크고 1백만톤 규모의 철강공장이 추가 되어있다.
또 부동산 가격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며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코렉스 시설을 포함한 제2공장에 있다. 불행하게도 코렉스 시설의 장단점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철강대국 일본과 중국사이에 끼어 있다. 일본은 조강량 세계 제1위, 중국은 세계 3∼4위를 목표로 약진하고 있다. 최신 설비를 갖춘 새로운 공장은 계속 투자를 하고 노후한 공장은 빨리 폐기 처분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코렉스 설비를 제외한 한보철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매우 중요한 기간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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