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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애플의 기사회생
입력1999-02-07 00:00:00
수정
1999.02.07 00:00:00
1998년 10월 중순에 열린 애플의 경영성과 발표회장에서는 여느 기업의 경영성과 발표회장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홀의 벽에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고 스피커에서는 「캔디맨」 음악이 흘러나오고, 수많은 풍선들이 청중들 사이에서 튀어오르고 있는 말 그대로의 축제다. 축제는 그의 공식 유니폼인 색깔이 바랜 청바지와 검은 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등장해 경영성과 수치들을 하나 하나 발표해 나아가자 절정에 다다른다. 예전의 이교도적인 애플 컴퓨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년반 전에만 해도 애플에게 미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애플은 다시 한번 전통파괴주의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1997년 9월 스티브 잡스가 임시 최고경영자(INTERIM CEO)로 재진입한 이후 1년동안에 애플은 59억달러의 매출에 3억900만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특히 마지막 4분기에는 1억900만달러의 이익을 달성하는 등 성과 향상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1998년 8월에 출시된 아이맥(IMAC) 컴퓨터다. 아이맥 컴퓨터는 모니터 본체 일체형으로 푸른 색깔의 투명한 케이스에 달걀모양의 깜찍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고 있다. 아이보리 색깔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 익숙해 있는 소비자들을 아이맥은 우선 디자인으로 강력하게 유인한다. 더구나 매킨토시 컴퓨터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사용자 편의성(USER FRIENDLINESS)까지 부가해서 아이맥 컴퓨터는 출시 6주만에 27만8,000대를 파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애플 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회생 불능 상태의 애플
애플은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에 의해 설립된 대표적인 벤처기업이다. 애플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애플 컴퓨터를 개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84년에는 매킨토시를 발매하여 PC 산업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매킨토시는 명령어에 의해서 운영되는 도스형 운영체제와 대비되는, 그래픽 유서 인터페이스(GUI)형의 운영체제(맥 운영체제)를 채택한 세계 최초의 PC였다. 아이콘과 마우스로 대표되는 GUI형의 맥 운영체제는 현재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윈도우의 모태가 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다. 맥 운영체제를 타 기업들에게 라이센싱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맥 운영체제가 전 세계 PC산업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그 자리를 맥 운영체제를 모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그 이후 애플은 뛰어난 제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윈도우 체제와의 호환성, 맥 운영체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응용 프
로그램의 부족 등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점차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 잡스가 등장하기 이전에 애플은 1년동안에 71억달러의 매출에 1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아사(餓死)직전의 상태였다. 거의 모든 매스컴과 경영분석가, 심지어는 종업원들조차도 애플이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출과 시장 점유율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비용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부서들은 서로 싸우기 바빴고, 기업내의 가장 재능있는 종업원들은 속속 애플을 떠나고 있었다.
애플의 돌아온 황제
1996년 12월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11년만에 특별 자문가로 다시 애플에 돌아왔다.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던 애플로서는 그의 특별한 능력이 다시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문가의 역할만으로서는 애플을 회생시킬 방도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당시의 CEO 아멜리오를 퇴임시키고 애플의 설립자이자 애플의 정신과 개성을 창조한 카리스마적 경영자인 잡스를 임시 CEO로 영입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경영권을 확보하자마자 즉각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해 나아갔다. 그의 의사결정과 행동은 매우 신속한 것이었다. 애플의 제품, 조직구조, 인력, 생산, 유통, 마케팅 등 거의 모든 부문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우선 그는 지금까지의 라이센싱 전략을 변경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게 운영체제 시장을 선점당하는 뼈아픈 실수를 통감하고 있던 애플은 수년전부터 몇몇 기업에게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의 복제품 생산과 판매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라이센싱의 허용은 윈도우 사용자층으로의 시장 확대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제품 구매자의 99%가 기존의 매킨토시 사용자였던 것이다. 즉 이들 복제품은 오히려 매킨토시의 판매와 이익을 감소시키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잡스는 라이센싱을 폐지해 버렸다.
둘째, 애플은 방만한 제품 라인을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보유하고 있는 핵심 제품으로 과감하게 축소했다. 당시 애플은 15개의 제품 라인을 생산하느라 사업의 초점을 잃고 있었다. 잡스는 우선 프린터와 뉴톤의 생산을 중단하고 애플이 네개의 핵심 제품 카테고리에 집중토록 했다. 데스크탑 매킨토시와 포터블 매킨토시(노트북)의 전문가용과 일반 소비자용 등 네 가지다. 이 중에서도 초점은 일반 소비자용에 두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용 모델 또한 디자인과 전자 출판용 시장에서 아직도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소홀히 할 수 없는 핵심적인 제품이다.
셋째, 지금까지의 분산된 조직구조를 중앙집중적인 구조로 변화시켰다. 당시 애플은 매우 분산되어 있는, 비효율적인 조직구조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기업 내에 무려 22개의 마케팅 그룹이 활동하고 있는 식이다. 잡스는 이러한 구조를 재조정하여 분산되어 있던 마케팅, 영업, 재무, 생산 등을 각각 전사적인 단일 부서로 통합해 버렸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넷째,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했다. 우선 공격적인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수립을 위해 유명한 1984년의 TV 스파트를 포함해서 일련의 매킨토시 광고를 제작했던 리 클라우를 재고용했다. 클라우와 잡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실시했던 뛰어난 광고 캠페인을 환기시키는 새로운 제품광고와 이미지광고를 만들어 냈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매킨토시를 사서 「다르게 생각하는(THINK DIFFERENT)」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일즈 데이비스, 존 레논과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천재들의 판테온에 동참하십시오』 애플은 이 새로운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위해 1998년 일년 동안에 1억달러가 넘는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다섯째, 유통 채널을 정예화했다. 잡스와 영업담당인 미치 맨디치는 매킨토시를 미국에서 가장 큰 컴퓨터 소매점인 COMPUSA를 포함해서 애플에 대해 헌신하는 소매점을 통해서만 팔기로 결정했다. 애플에 대해 헌신적이지 않은 수천 개에 달하는 나머지 소매상들과는 과감하게 거래를 끊었다.
여섯째, 재고를 혁신적으로 감축했다. PC는 그 가치가 매우 빨리 떨어지는 제품이다. 따라서 재고를 감축하면 수백만달러의 원가감축도 가능해진다. 재고의 감축을 위해 잡스는 자칭 「재고의 왕」이라고 하는 컴팩의 팀 쿡을 생산 담당으로 영입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1997년도 12월에 4억달러 수준이었던 애플의 재고는 1998년 9월에는 단지 7,800만달러 수준으로 급격하게 이어졌다. 재고의 감축이 원가의 절감으로 이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곱째, 애플은 직접적인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결과는 1997년 8월에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체결한 새로운 계약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계약은 잡스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계약은 또한 「만약 빌 게이츠가 애플이 소생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애플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우 의미있는 것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5년동안 윈도우용 오피스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용으로 오피스의 새로운 버전을 출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오피스가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 시트의 표준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애플로서는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오피스의 지속적인 개발이 경쟁력 확보와 사업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인이었던 것이다.
여덟째, 애플은 응용 프로그램 제작업체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연간 3억달러 정도 판매하는 아도비 시스템의 제품·마케팅 담당인 브루스 치즌은 『지난 몇해동안 그 어떤 프로그램 제작업체도 애플과 함께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애플은 프로그램 제작업체들이 기존의 모든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해야만 하는 새로운 맥 운영체제 전략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프로그램 제작업체를 멀리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라고 과거의 애플에 대해 매우 심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잡스는 이러한 관계를 180도 변화시켰다. 우선 프로그램 제작업체들의 모든 니즈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각 프로그램 업체별로 담당자를 할당했다. 그 다음에는 제작업체들을 설득하고 애플 편으로 만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이맥 컴퓨터의 출시였다. 아이맥 컴퓨터는 향후 애플이 일반 소비자 시장을 어떻게 공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프로그램 제작업체들도 이에 따라 애플의 미래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매킨토시용의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의 미래
잡스에게 있어서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턴어라운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업의 초점을 잃고 시장 점유율과 매출 그리고 이익까지도 잃게 되기 이전의 애플, 자신이 심어 놓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애플, 전통을 파괴하고 스스로 자신을 파괴해 나가는 이단아적인 애플을 소생시키고 싶어한다. 그에게 있어서 사업은 1976년에 처음 애플을 설립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사업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애플이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업 외부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종업원들에게도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의 향상으로 주가는 97년말의 12.75달러에서 1년만에 37달러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애플에 대한 소비자, 컴퓨터 관련산업의 종사자, 전문가의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침체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로 대표되는 「윈텔」의 아성때문이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이제 명확한 전략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애플이 「윈텔」에 이은 두번째의 대안이라는 사실 또한 애플의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애플의 미래는 소비자시장에 있다. 현재 소비자 시장을 겨냥하고 이를 제대로 공략하고 있는 업체는 하나도 없다. 애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돌아온 황제 스티브 잡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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