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홍보과장 A씨는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에게 "서류상 입원 처리를 하고 실제로는 통원치료를 해도 된다"며 허위입원을 권유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보험사에서 타낸 돈만도 2억4,000만원에 달하지만 사기 행각의 덜미를 잡힌 홍보과장과 환자에게 부과된 벌금은 최대 1,000만원에 그쳤다.
운전자 A씨가 지인인 B씨를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하다 술에 취한 B씨가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사망보험금 1억2,000만원을 받기 위해 자동차 문이 저절로 열려 B씨가 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거짓임이 밝혀졌다. 1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편취하려 한 보험사기였지만 재판 결과 B씨의 벌금액은 고작 50만원에 불과했다.
보험사기가 갈수록 증가하는 주된 이유로 일반 사기범죄에 비해 사회적 경각심이 낮고 처벌수위가 약한 점이 꼽힌다. 안 걸리면 '대박', 걸리면 '사기미수' 정도의 미약한 처벌을 받는 현실에 대한 '학습효과'가 보험사기를 키우는 토양이라는 지적이다. 보험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적발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억대 보험사기 꾸며도 솜방망이 처벌=현재는 보험사기를 저질러도 형법에 따라 '사기죄'로 처벌된다. 형법상 사기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지난 2008~2012년 보험범죄 형사판례 1,017건을 분석한 결과 보험사기범에 대한 징역형 비율은 22.6%로 일반사기범(45.2%)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반면 벌금형과 집행유예 비율은 각각 51.1%(806명)와 26.3%(415명)로 집계됐다.
특히 과거에 비해 실형보다는 벌금형이 늘었다.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벌금형의 경우 2002년 9.3%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51.1%로 늘어났다.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보험사기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눈에 띄지 않다 보니 '피해자 없는 범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로 인해 가해자의 정상참작을 우선 고려해 형량이 일반사기에 비해 낮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기에 따른 피해 급증=보험사기로 인한 피해는 결국 일반 가입자들에게 돌아간다. 보험사기가 늘어날수록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보험상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면 보험제도 전반의 신뢰도가 떨어져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보험사기 추정 규모는 3조4,000억원으로 1가구당 20만원, 국민 1인당 7만원의 보험료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2010년 이후 보험사기 적발 규모가 매년 10% 안팎으로 증가하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가구당 비용은 최근 더욱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록 수법도 다양화·지능화되고 있다. 사무장이 병원을 세워 50억대 보험사기를 저지르거나 자동차정비 업소가 조직적으로 자동차 보험 범죄에 가담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나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흉포한 보험사기 사건도 증가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신 실장은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도 보험금을 받기 위해 입원하는 등 대부분의 사람이 보험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뛰는 보험사기, 기는 수사력=정부도 보험사기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최근 몇 년간 보험사기에 대한 수사체계를 구축해왔다.
각 지방청에 지능범죄수사대 신설 및 보험사기전담팀을 2월에 신설했다. 이에 더해 서울·부산·경기·전북 등 4개 지방청에 교통범죄수사팀을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서울청에는 31개 전 경찰서에 교통범죄수사팀을 확대 설치했다. 또 범정부 차원의 보험사기 대응 강화의 일환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정부합동 보험범죄전담대책반'을 2009년부터 설치, 운영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보험사기 적발 규모는 2013년 기준 5,190억원으로 전체 보험사기 추정 규모(3조4,0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따라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보험사기 적발을 위한 시스템을 보다 체계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제기돼왔다.
우선 보험사기에 대해 형법상 '보험사기죄'를 신설하거나 '보험사기 처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보험사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함으로써 보험사기의 일반예방 효과를 증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또 업계 차원에서도 사내 보험사기조사전담반(SIU)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원화된 데이터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최근 SIU는 보험사기 적발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지만 법적으로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크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민간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SIU 요원에게 제한적 조사권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생·손보협회와 보험개발원에 분산돼 있는 보험정보를 모아 일원화된 보험사기 인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홍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보험사기 조사 목적으로 데이터 접근을 활용하는 데 법적 제약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