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의사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과 대면한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뇌며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숭고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들도 있다. 최근 파퓰러사이언스는 과학?의학계의 이색 직업을 선정, 발표했는데 ‘가장 마음 내키지 않는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직업’ 부문 수상자는 바로 코끼리 정관 절제사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매일 아침 일터로 출근하면 5cm의 피부, 10cm의 지방, 25cm의 근육 속에 감춰진 지름 30cm의 물건(?)과 두 눈을 부릅뜬 채 힘겨운 씨름을 벌여야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코끼리의 고환으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정액이 음경으로 가지 못하도록 정관(精管)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이들의 업무다. 코끼리는 하루 평균 50kg 이상의 식물을 먹어치우는 대식가인지라 번식률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주변 환경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불임수술을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 하지만 몸무게 5~8톤, 키 6~7m의 건장한 환자를 상대로 정관수술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코끼리 1마리의 정관수술을 위해 헬리콥터, 크레인, 트럭 등 엄청난 장비와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되는 이유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미국 플로리다 주 소재 동물원 ‘애니멀 킹덤’의 수석 수의사인 마크 스테터. 스테터는 “헬리콥터에서 마취 총을 발사한 뒤 코끼리가 완전히 잠에 빠졌을 때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수술을 한다”며 “수술 도중 마취가 풀리면 발길질 한 번에 의사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사람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얼마 전 비디오 모니터가 부착된 1.2m 길이의 코끼리 정관수술 전용 ‘광섬유 복강경’(fiber-optic laperoscope)을 개발한 것도 좀 더 신속?정확하게 수술을 마치기 위해서다. 이 복강경은 지난해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벨게폰덴 지역에서 4마리의 야생 수컷 코끼리를 대상으로 처음 쓰였는데, 4마리 모두 아무런 합병증 없이 잘 살고 있다. 스테터는 “앞으로 남아공 전역에서 이 복강경이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코끼리의 개체 수 조절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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