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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심상찮은 물가

정권말만 되면 '물가 신드롬'<br>MB, 3% 초반으로 잡겠다지만… 유가·유럽위기·선거등 곳곳 악재<br>대안주유소 등 단시일내 효과 한계… 재정정책도 사실상 힘들어

설 명절을 앞두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선물을 보내지만 물가상승으로 서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롯데마트 직원들이 2일 경기 오산 물류센터에서 분주히 설 선물 배송작업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우리 정부는 새천년 들어 정권 막바지마다 '물가 홍역'을 앓아왔다. '국민의 정부' 말년인 지난 2002년에는 전년의 안정적인 물가기조가 연초부터 깨지면서 관계당국의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고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까지 급등하자 정부가 각종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잡기에 사활을 걸겠다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말에 들어서면서 결국 '물가관리'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 대통령은 2일 신년 특별 국정연설에서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3%대 초반에서 잡겠다"고 밝혔다. 이어 "성장도 중요하지만 물가에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3.2%로 전망했던 정부의 최근 '2012년 경제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4.0%로 고공행진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워낙 높았던 만큼 상대적으로 올해의 물가상승률은 통계적으로 낮아지는 '기저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1년간의 물가상승세를 예상하는 지표인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6개월 동안 내리 4%대를 기록해왔다. 이는 대내외 변수들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다.

특히 유럽발 경제위기가 1ㆍ4분기에 더욱 심해질 경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오히려 인하할 수 있고 이는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더욱 앙등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대외적으로 미국이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란 제재법안을 발효시킨데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란 공습론까지 제기되면서 유가불안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올해 신규주택 입주물량이 지난 10년간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전월세난 재연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요금 인상이 점진적이나마 불가피한 상황이며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로 시중에 돈이 풀려 물가를 자극할 염려도 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본부장은 "이미 현재의 물가수준 자체가 매우 높은 상황이어서 정부가 3% 초반 수준으로 상승률을 관리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체감도는 훨씬 높을 것"이라며 "반면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물가수단은 매우 제약돼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는 이미 주요 연구기관들의 전망에서 묻어난다.

주요 연구기관들이 최근 제시한 올해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보면 대부분 정부(3.2%)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우 3.5%로 내다봤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삼성경제연구소는 3.4%로 관측했다. 한국은행은 이보다는 낮지만 3.3%로 예상해 정부 관측치를 살짝 웃돌았다.



그나마 이 같은 관측치도 이란 사태 등이 악화될 경우 상향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향 안정 요인보다는 돌발악재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반면 정부의 물가대책은 연내에 효과를 내는 데 한계점을 안고 있다. 물가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풀겠다는 처방전은 있으나 당장 '해열'할 수 있는 즉효약은 없는 셈이다.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안주유소 1,500여곳 설치나 올해 공급할 보금자리주택 15만가구의 입주시점은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당장 올해 상반기의 기름 값이나 전월셋값 불안요인을 잠재우는 데 한계점이 있다. 부동산114의 한 관계자는 "올해 서울 지역의 아파트 입주물량이 지난해보다 40%가량 줄어드는 반면 전월세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어 세입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살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또 다른 물가대책인 상품 유통구조 혁신 역시 그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소비자단체들이 지적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해 소비자단체들과 함께 주요 소비자가격을 비교하고 공시하는 데는 상당한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유통구조 혁신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바람직하지만 당장 효과를 보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시적 접근보다는 보다 거시적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금융통화당국이 올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여파로 시중 유동성이 팽창할 조짐을 감지할 경우 선제적으로 이를 흡수하며 정부는 재정을 적극적으로 풀고 탄력적인 비과세ㆍ감면조치를 통해 물가 애로계층에 대한 족집게식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금융통화당국으로서는 올해 경기진작이나 가계 이자부담 문제로 금리를 적극 인상해 시중통화를 흡수하기가 쉽지 않다. 유럽발 위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인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비과세ㆍ감면조치 역시 세수누락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재정건전화 방침과 상충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물가상승에 탄력적ㆍ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로는 재정정책이 유일하지만 집권 말기에 재정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야당의 견제가 매우 심해지기 때문에 정책의 동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정권 말기마다 물가악재에 시달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깊어지는 침체의 그늘 아래에서 올해에도 물가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계속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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