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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년 전 계획했던 '원전 르네상스'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한편 가격 정책을 통해 전력 수요 자체를 줄이겠다는 새로운 에너지 믹스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2035년까지 신규 원전 건설은 최대한 억제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이 늘어나면서 전기요금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 여건이 앞으로 10~20년 동안 원전의 효율성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관합동워킹그룹이 제시한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가 이상의 획기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한데 정부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전 비중 절반으로…삼척ㆍ영덕 신규 원전 건설 미지수=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을 짠 워킹그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계속된 원전 안정성 문제 등을 감안해 7~35% 범위에서 원전 비중 논의를 시작했다.
이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원전 건설 사업을 백지화하고 가동 중인 원전도 일부 폐쇄해야만 가능한 10%대 수치와 원전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30%대 수치를 배제하고 20%대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정부의 5년 전 계획(2030년 발전 비중 41%)보다 최대 절반가량 원전 비중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원전 신규 건설 계획도 일부 손질될 가능성이 생겼다. 정부는 지난 5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24년까지 현재 운영 중인 23기의 원전 외에 11기의 원전을 더 지어 총 34기의 원전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4년 이후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삼척과 영덕에 150만㎾급 원전 2기씩을 더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신청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원전의 비중이 20%대 초반까지 떨어질 경우 삼척ㆍ영덕 원전 건설은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 비중이 20%대로 가도 현재 건설ㆍ계획된 11기의 원전은 예정대로 지여져야 하지만 삼척과 영덕의 신규 원전 건설 여부는 이번 기본계획만 갖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LNG 발전 비중 크게 늘어날 듯…요금 인상 불가피=문제는 원전이 빠진 자리를 어떤 발전원으로 채우느냐이다. 워킹그룹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력사용량은 연평균 2.5%씩 증가해 최종 에너지 중 전력 비중이 현재 19%에서 2035년에는 28%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 수요를 최대한 억제한다고 해도 꾸준히 전력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만한 가장 효율적인 발전원은 석탄 화력 발전이다. 하지만 석탄 화력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고 원전처럼 대규모의 송전망 건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원전의 자리를 채우기에 한계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경제성은 떨어져도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도시 인근에 분산형 발전원으로 도입하기 쉬운 LNG발전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 내에서도 결국 LNG 발전 비중을 높이는 방향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NG 발전 비용이 석탄 화력의 2배에 달하고 LNG 수급 여건이 국제 정세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LNG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에너지기본계획도 결코 안정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발전원가가 올라가면 대규모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데 우리 산업계가 이를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고 싼 전기요금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발전-송전 설비 패키지 건설… 지역별 요금 차등화=워킹그룹은 이번 계획 초안에서 밀양 송전탑 사태 등에서 불거진 전력 설비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발전설비를 먼저 계획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송전계획을 수립하던 기존의 전력 설비투자 방식이 수정된다. 앞으로는 송전망이 확보될 수 있는 곳에 발전소를 지을 수 있도록 발전-송전 설비계획을 패키지화하고 신규 발전사업자에게는 송전 입지 가이드라인을 미리 제시해 송전망 설치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중장기적으로는 지역별 전기요금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송전길이에 따라 늘어나는 비용도 전기요금에 반영하겠다는 획기적인 요금체계 개편이다. 이렇게 되면 주변에 발전소가 부족한 수도권의 전기요금이 지방보다 높아지는 요금 체계도 만들어질 수 있다. 워킹그룹은 다만 "지역별 요금 차등화는 국민 수용성 등을 감안해 시기와 방식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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