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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공간을 3차원이라 하고 시공간이 일치된 순간을 4차원이라고 부른다. 그 중간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3.5차원의 세계를 추구하는 조각가 윤영석이 태평로 로댕갤러리 봄 전시에 초대됐다. 작가가 말하는 3.5차원이란 평면이나 입체작품에 시간의 요소가 개입돼 동일한 사물을 시차를 두고 볼 때 알 수 있는 지각(知覺)의 착각을 깨닫는 순간을 의미한다. 또 시간이라는 흐름을 측정하고 포착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기도 하며, 생명체를 복제하겠다는 인간의 야심에 대한 연민을 반영하기도 한다. 전시장에는 90년대 초기 작품을 비롯해 입체화면을 연출할 수 있는 렌티큘러를 활용한 평면작품과 조각 등 20여점이 자리를 잡았다. 3.5차원의 영역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입구 넓직한 파빌리온에 위치한 점토 조각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당구 큐대를 잡은 거대한 손은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기형인 육손이며, 팔뚝에는 컴퓨터 내부 마더보드 칩세트 혹은 한의학의 경혈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회로가 그려져 있다. 작가는 작품에 첨단 과학의 이면에 어른거리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대한 공포를 새겨 넣었다. 전시장 맨 끝에 위치한 ‘움직이는 공(空)’은 텅 빈 농구장에 들어선 듯 하다. 정면에는 농구 골대가 서 있고 벽면에는 랜티큘러를 활용한 농구공 이미지가 보는 위치에 따라 변화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방금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과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농구장에 남은 열기가 느껴진다. 그 밖에도 인공 수정 후 태어나자마자 죽은 애저(愛猪)의 이미지를 담은 비닐백을 달아 놓은 ‘애저농원 프로젝트’, 나프탈렌을 녹여 틀에 부어 만든 ‘향기로운 뇌’, 복제양 돌리의 성공에 대한 작가의 충격을 담은 ‘표본실의 양들’ 등 생명복제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담은 작품이 선 보인다. 작가는 “현대미술에서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져 자칫 관람객들이 어렵게 생각할까 걱정된다”며 “현실에서 벗어나 공간과 시간을 예술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02)2014-6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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