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국내 굴지의 모 그룹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킹하려 시도한 적이 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면서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발렌베리 가문에는 특별한 것이 많다. '조국 스웨덴에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면 자랑스럽다'는 인식이 첫째다. 걸핏하면 '본사를 법인세가 싼 중국이나 싱가포르로 이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국내 기업들과는 인식부터 다르다. 이익이 발생하면 사회공헌이 우선이다. 19세기에 창업해 6대째 혈연에 의한 가업승계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거부감이 없는 데도 이유가 있다. 가문의 후계자가 되려면 두 가지 필수조건이 붙는다. 석사 이상부터는 자력으로 공부하고 스웨덴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6대째 가업승계'에는 솔깃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신이 없었던 탓일까. 결국 국내 모 그룹은 발렌베리그룹에 대한 벤치마킹 계획을 접었다.
무섭게 성장하는 인도를 대표하는 타타그룹 역시 사회공헌으로 12억이 넘는 인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고 있다. 1868년에 창업한 이래 '이익 가운데 3분의1은 사회로 되돌린다'는 경영철학을 5대째 이어온 덕분이다. 후계가 5대째 이어지는 동안 비(非)타타 가문 출신이 두 번 그룹을 맡았으나 후계에 대한 잡음이 없다. 전 세계 80여개 국가에 100여개 업체를 거느리고 국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외형을 넓혀가며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적극 영입하면서도 인도에 대한 투자와 사회공헌이 최우선이다. 창립자인 잠셋지 타타는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하는 대영 비폭력 저항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인도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말년에 소떼를 몰아 고향을 찾고 대북 사업에 매달렸던 아산 정주영과 비슷하다.
아산이 '국민기업'의 기틀은 닦았다면 후대들은 '존경 받는 기업'을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발렌베리나 타타그룹과 같은 그룹도 국내 기반의 뿌리가 깊어야 가능하다. 고질적인 노사 파행과 후계 다툼은 '존경 받는 기업'은커녕 '국민기업'의 이미지마저 갉아먹을 수 있는 치명적 독약으로 꼽힌다.
기획취재팀=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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