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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저축은행 구조조정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오는 9월 하순까지는 부실을 이유로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조건이 달려 있다. 의도적으로 칼을 들이대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저축은행들은 가능한 모든 자구노력을 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살생부에 오르지 않기 위해 저축은행들이 벌이는 구조조정 작업은 말 그대로 필사적이다. 대형 저축은행 그룹은 계열사 매각작업을 추진하고 있고 건전성 문제로 저축은행을 매각하려는 대주주도 있다. 부산저축은행처럼 버티다가는 감옥 신세를 면하기 힘든 탓이다. 하지만 정작 저축은행들의 구조조정 상황은 여의치 않다. 시장에서의 인수합병(M&A)은 '올스톱' 상태다. 물건을 팔 사람은 급하지만 살 사람은 서두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구조조정을 하고 싶어도 못해서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저축은행들의 험난한 구조조정=당초 6월 중으로 계열사인 경기솔로몬을 팔아 자본확충을 하려던 솔로몬저축은행은 매각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솔로몬의 한 관계자는 "세세한 부분을 놓고 가격협상이 다소 길어지고 있다"며 "매각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솔로몬의 매각가격은 솔로몬 측이 밝힌 것보다 400억원가량 적은 6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9월 말께 저축은행 살생부가 나온다고 하니 그때가 되면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매수자들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건전성 문제로 매각을 추진 중인 대영저축은행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외국계 투자자와 인수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드러나 무산됐다. 한 공제조합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제일저축은행도 제일2를 팔아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두고 매수자를 찾고 있지만 마땅한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체 매각작업이 신통치 않은 것은 가격 때문이다. 기존 저축은행 대주주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으려 하고 매수자는 업계가 위기에 빠져 있는 만큼 헐값에 사들이려고 한다. 더욱이 일부 저축은행 주주들은 여전히 수백억원의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가 자산을 클린화해준 저축은행 매물도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저축은행에 관심이 있는 곳들은 최대한 가격을 적게 부르고 있다"며 "양측 간 가격차이가 커 매각작업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금융위기 때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했던 일부 업체도 자산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돈다. ◇9월 말 이전에는 구조조정 한계=업계에서는 "결국 9월 말에 살생부가 나온 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국이 9월 말 결산 이전에 경영진단 결과를 공개하기로 한 만큼 이때부터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바꿔 말하면 9월 말 이전에는 저축은행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수 희망자들은 당국이 살생부를 만들고 나면 부실 저축은행들의 매물이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이전에 서둘러 살 필요가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 미만으로 밝혀지는 곳은 정상화 작업 이전에 뱅크런에 따른 유동성 문제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점이다. BIS비율이 5% 이상이어서 정상 저축은행으로 분류되더라도 5~7%대 수준이라면 고객들의 이탈현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하반기 최소 3~5개 저축은행의 퇴출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동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퇴출 대상 저축은행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현 단계에서는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반기 구조조정 폭과 대상이 어떻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며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부실 저축은행을 솎아내고 정상 저축은행은 영업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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