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중소기업 대표 김모씨는 최근 시설자금 7억원가량을 거래 은행에서 대출 받은 직후 적금통장을 개설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월 1,000만원씩 납입하는 3년 만기 적금을 들어 차후에 대출 상환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가자는 의도였다. 일반 가계로 따지면 빚을 갚기 위해 예금을 들어 살림살이를 줄이는 일종의 '강제 저축'이라고 할까. 하지만 은행을 찾은 김씨는 이내 생각을 접어야 했다. 은행 직원은 "최근 대출실적이 있어 (적금통장을 개설하면) 금융 당국에 '꺾기(구속성예금)'로 적발될 수 있다"며 거절했다. 예금을 들고 싶어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셈이다. 금융 당국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겠다면서 행한 꺾기 근절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이른바 '꺾기의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김씨는 "회사 자금운용계획에 맞춰 자발적으로 거래 은행에서 예ㆍ적금을 개설하려고 해도 번번이 꺾기 규제에 걸려 체계적인 자금 관리가 어렵다"며 "주거래은행과 거래 실적이 많아야 대출시 금리 혜택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정작 예ㆍ적금 통장은 다른 은행을 찾아가서 개설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은행 대출시 부당한 상품가입 권유 등을 방지하기 위한 당국의 꺾기 규제가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자금운용계획에 따라 자발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원하는 중소기업들 조차도 꺾기 규정에 걸려 손발이 묶여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대출일 기준 앞뒤로 한 달간 대출금의 1%를 초과하는 예금을 받는 경우 등을 꺾기로 보고 제재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자발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원하는 대출자들을 위해 확인서가 있는 경우에는 꺾기로 간주하지 않는 '확인서 제도'가 운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에서 중소기업과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악용, 강제적으로 확인서 작성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적발되며 이마저도 지난 2009년 폐지됐다. 대신 금감원은 선의의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 ▦대출금의 1%를 초과하더라도 만기 예금을 재예치하는 경우 ▦예금담보대출 ▦물품대금 결제 ▦담보물 교체 등에 한해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예외조항이 있지만 담당 직원이 추후에 꺾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번거로운 부분이 많아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런 문제점을 알지만 꺾기에 대한 전면적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일부 중소기업을 배려해 규제를 완화하면 시중은행이 또다시 이를 악용할 소지가 높아 전면적 규제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의 철저한 꺾기 규제에 일부 시중은행 대출창구 직원들 역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원하는 기업들에조차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은행별로 금융상품 실적 목표는 크게 변동이 없지만 영업기회가 차단되면서 주변 친지나 지인에게 상품가입을 권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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