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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월, 1월, 3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올린 달을 나열하면 이렇다. 한은은 지난해 9월을 제외하면 두달에 한번씩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해왔다. 이른바 '징검다리식 인상 흐름'을 유지해온 것이다. 하지만 13일 금통위에서 이런 공식은 보기 좋게 깨졌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베이비스텝(계단식 인상)이란 25bp(0.25%포인트)의 보폭으로 올리는 것일 뿐 징검다리 인상으로 정의하지는 않는다"며 정책의 일관성이 깨진 것은 아니라고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짐짓 달라졌다. 당장 연내 최고 4%까지도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금리인상에 대한 예상이 3.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환율 흐름 고려한 것일까=한은이 징검다리식 금리인상 기조를 버리고 '동결'로 방향을 튼 것은 공급 측면의 물가압력이 다소 완화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이날 "전체 물가상승 압력 가운데 45~50%가 공급 측면, 나머지 반이 수요압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라고 말했다.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 가운데 공급 측면의 요인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김 총재의 발언에 비춰보면 한은이 징검다리식 금리인상 기조를 버리고 동결로 방향을 튼 것은 공급 측면의 물가압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한때 11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WTI)는 최근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이상기후로 급등했던 농산물 가격도 최근 기상여건 호조로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월 대비 0.0%에 그친 것도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안정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4.2%로 여전히 물가안정목표 범위의 상단을 웃돌았지만 4월 물가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은 물가압력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김 총재의 성향상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세계경제 둔화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럽은 그리스가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포르투갈ㆍ아일랜드 등의 재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때 1,060원대까지 추락한 원ㆍ달러 환율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에 금리를 또다시 올릴 경우 1,080원대로 복귀한 원ㆍ달러 환율이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인상기조 변함 없어…속도조절 들어갈 듯=김 총재는 "이번 금리동결이 시장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계적으로 두달에 한번씩 올리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가는 방향을 일관되게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금리인상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물가에 대한 관심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금리 수준에 대한 시장의 예상은 한참 낮아진 듯하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금통위가 명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는 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3.5% 안팎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향후 7번의 금통위가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두세 달에 한번씩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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