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자본이 최대주주인 코스닥기업들이 자진 상장폐지를 통해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상장기업으로서 받게 될 경영권 간섭이나 사업전략 노출 등의 우려를 피할 수 있는데다 한국 자본시장의 자금 조달력이 생각만큼 풍부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31일 히타치국제전기는 국제엘렉트릭(053740)코리아의 상장폐지를 위해 발행주식 총수의 48.33%인 476만1,000주를 오는 11월19일까지 주당 2만5,000원에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했다. 히타치국제전기는 지난 2010년 8월 국제엘렉트릭코리아의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히타치국제전기 관계자는 "응모율에 관계 없이 공개매수에 응모한 주식 전부를 매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히타치국제전기가 국제엘렉트릭코리아의 상장폐지를 결심한 것은 외부의 경영권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다. 공개매수를 주관하는 삼성증권 관계자는 "자체 보유 자금이 풍부해 굳이 한국에서 자본을 조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며 "상장을 유지하면 경영 간섭을 받는 등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상장폐지하고 100% 자회사로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엘렉트릭코리아는 최대주주가 히타치국제전기로 바뀐 뒤 4년여간 단 한 번도 국내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인 기업들이 코스닥시장을 떠나는 사례는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기업인 3노드디지탈과 중국식품포장이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나란히 코스닥시장을 떠났다. 2011년에는 한국전기초자가 일본계 최대주주인 아사히글라스의 요청으로 상장폐지됐고 2010년에도 글로벌 제약업체 IMI가 코스닥상장사인 에스디 주식을 공개매수해 상장폐지시켰다. 이에 앞서 다국적 전자상거래기업 이베이도 2001년 2월 옥션을 인수한 뒤 2004년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한 바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인 코스닥기업들이 한국 증시에서 떠나는 것은 자금조달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다양한 규제와 경영권 간섭에 따른 불편함이 크기 때문"이라며 "이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한국 증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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