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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벼룩시장 한번 가보시지요
입력1998-09-15 22:23:00
수정
2002.10.21 23:08:27
09/15(화) 22:23
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근래 벼룩시장에 가 보신 일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을 사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잡다하게 널려 있는 물건 가운데서 자기에게 요긴한 것을 아주 헐값에 흥정하고 나서 흐뭇해 하는 젊은이들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래된 구형(具型) 조그마한 TV를 폐품값 수준으로 사서 자기방 책상위에 올려놓고 뉴스를 들으며 아직도 멀쩡한 것을 싸게 샀다는 생각에 기분 좋아 합니다. 남 쓰던 것 거들떠도 보지 않던 시절하고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모인 어떤 점잖은 자리에서 서울대학교 곽수일 교수가 던진 화두(話頭)였다.
삼성그룹 사원들간에 요즘 사내(社內)벼룩시장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내 정보통신망에 중고물품 매매를 위한 전자게시판을 마련하고, 사원이면 누구나 PC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매매를 희망하는 게시물이 나날이 폭발적으로 늘어 하루 3백여건, 한달에 1만여건에 달한다. 거래되는 물건도 전자제품·유아용품·레저용품·문화관람권에서부터 중고자동차매매·주택매매·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내 벼룩시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에도 있고, 자세히 조사해 보지는 않았으나 모든 대기업들에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가는 추세이다.
벼룩시장의 인기는 헐값에 산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진짜 재미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확연한 구별 없이 누구라도 어울려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는, 그러다가 운좋게 예상치 않았던 진귀한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당장 쓰지 않거나 싫증이 난 물건을 처분해서 비록 중고품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싼값에 장만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원했던 물건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환호하는가 하면, 자기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는 물건을 갖게도 된다. 단순한 매매가 아니라 혼자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여운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에도 곳곳마다 유명한 벼룩시장이 있어서 해외여행하는 도중 일부러 틈을 내 둘러보는 사람들도 많다. 아주 희귀한 물건을 사다놓고 언제·어디에서 얼마만큼의 헐값으로 구한 것이라고 두고두고 자랑하는 사람도 보게 된다.
요즘 여러가지로 쪼들리는 때에 벼룩시장은 실리면에서나, 잡다한 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내는 재미로나,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나 새로운 삶의 지혜가 될 수도 있다. 곽수일교수의 제안처럼 벼룩시장을 찾아가 그곳에서 전개되는 일들을 직접 체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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