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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신세현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

'의학+공학 기술'로 뇌심혈관질환 조기진단

혈액내 혈소판 초순도 분리… 5분내 기능 검사 기술 개발

진단기기 시제품까지 제작… "상용화땐 해외시장 진출"

신세현(앞줄 가운데)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개발한 혈소판 진단 의료기기 시제품. /사진제공=신세현 고려대 교수

신세현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개발한 혈소판 진단 의료기기 시제품.
/사진제공=신세현 고려대 교수

"저는 과학자가 아닌 '과학기술자'입니다. 의학계의 아이디어와 공학계의 기술을 더 많은 분야에서 접목할 수 있도록 공정한 이익 공유 시스템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한국의 공학기술 수준은 의학 쪽 수요만 안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3일 고려대 이공계 캠퍼스에서 만난 신세현(51·사진)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의학과 공학을 융합하려는 비전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융합에 소극적인 두 분야가 손을 잡는다면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이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기계공학과 의학 간 융합 연구를 만난 것이 '운명과 같은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ㆍ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3월 수상자로 선정된 신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바이오 분야에 기계공학 기술을 접목한 과학자다. 혈액 속 혈구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혈구인 혈소판을 초순도로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혈소판 기능과 약물반응 검사를 현장에서 5분 내로 실시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했다.

신 교수의 기술은 압전판 양쪽 전극에서 발산한 초음파 진동으로 혈액에서 혈소판만 완전히 분리한다. 양쪽에서 만난 초음파가 만들어낸 표면탄성파의 힘이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 등을 크기순으로 밀어낸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의 기술은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 뇌심혈관계 질병을 조기 진단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혈소판은 피를 흘릴 때 혈액을 응고시키는 등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과도하게 활성화하면 혈관 안에서 혈액을 응집시킨다. 응집된 혈액은 혈관 벽에 붙고 심하면 혈관 벽을 막아버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람의 혈소판 특성에 따라 처방하는 맞춤형 치료가 일찌감치 시도됐다. 현재 글로벌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고 성장률도 매년 10%를 넘나든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이 방식이 최근에 도입됐다. 국내 혈소판 진단 의료기기 시장도 외국제품이 90% 이상을 장악한 상황이다.

신 교수는 "의료 분야는 수요가 기술을 이끄는 형태"라며 "우리 공학계는 아직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이 뭔지 관심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현재 대형 다국적 기업이 공급하는 의료기기보다 진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의료기기는 혈소판을 완전히 분리하지 못하고 검사 과정에서 혈소판이 일부 활성화돼 순수한 검사 결과를 얻기도 어렵다. 한 번 검사하는 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8만원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신 교수는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쯤에는 다른 제품과 비교 가능한 임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시제품까지는 제작했지만 등록·승인 절차를 감안하면 상용화까지는 몇 년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품화에 성공하면 해외시장 진출에도 나설 방침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혈소판과 같이 마이크로 크기(100만분의1m)를 넘어 나노 크기(10억분의1m) 입자까지 분리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그는 "의료기기 분야는 국내 시장이 작아 무조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제품화도 연구자가 주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가 바이오 융합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국내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전통 기계공학인 열전달 분야를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기계공학과 의학의 융합, 구체적으로는 혈액실험에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대학은 기계공학 쪽에서도 미국에서 50위권 밖의 학교였지만 주저하지 않고 유학을 선택한 것은 학교 간판보다 오로지 참신한 연구 주제 때문이었다. 신 교수는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는데 정부 관계자가 그동안의 유학 리스트에 없는 학교라며 깜짝 놀랐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신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경북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연구비를 확보하려면 주 종목인 혈액 실험에만 매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의학 분야까지 연구하는 공학 교수는 그가 유일했다. 그는 주로 자동차 동력전달장치인 토크 컨버터 개발 작업으로 연구비를 확보했다.

융합연구 과정에서도 한 차례 실패를 겪었다. 신 교수는 2003년 리오메디텍이라는 학내 벤처기업을 창업해 적혈구 변형을 검사하는 1회용 마이크로칩을 개발했다. 문제는 개발 과정에서 의학계 자문을 전혀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료계 수요도 파악하지 않고 모든 당뇨병을 다 진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좌절을 겪었다.

리오메디텍은 현재 당뇨성 미세혈관 합병증을 조기 진단하는 마이크로칩 개발에만 집중한다. 2007년 고려대로 옮긴 뒤부터 신 교수는 대표에서 물러나 기술자문 역할만 맡았다. 신 교수는 "실패로 얻게 된 교훈은 의료기기 개발은 반드시 전문의사와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지금은 고대의료원·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병원 전문의와 늘 협업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도전을 즐기는 과학자다. 공학과 의학 간 융합을 생각하면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설레어 한다. 그는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더 많은 경험을 해볼 것을 권했다. 신 교수는 "어릴 때부터 형님과 썰매·연 같은 것을 직접 만들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공학의 길로 들어섰다"며 "과학자를 하고 싶다면 경험한 만큼 길이 열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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