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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마케팅과 고객신뢰
입력2003-06-26 00:00:00
수정
2003.06.26 00:00:00
100엔 세일, (영업종료직전) 신선식품 떨이세일, 개점기념 한정세일 등등
지난 1998년 일본 헤이세이(平成) 불황이 한창일 때 도쿄의 거리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건 바겐세일 알림판들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연수중이었던 필자는 불황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일본의 여름은 습기가 많은 탓에 찌는 듯한 더위로 악명이 높아 여름이 오기전 서둘러 에어컨을 구입해야 했다. 동네인근 전자제품 할인점이 개점기념 할인행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잠을 설치며 새벽에 눈을 떠 자전거로 할인점에 갔다. 그러나 이미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늦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이 끝나는 횡단보도 끝에 섰다.
그런데 웬걸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이 새치기를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질책하는 것이었다. 민망하고 황당해 하며 뒤를 돌아보니 횡단보도를 건너가 있던 행렬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에어컨을 정가에 구입해야 했다.
불황의 악령이 우리나라에도 덮치고 있다. 청와대나 정부 정책결정자들이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질 거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의 체감경기는 불황의 터널로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단기 경기척도로 간주되는 백화점의 매출이 지난해 하반기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재래시장은 파리를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 내수시장이 그야말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내수업종의 기업들은 저마다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소위 `불황 마케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백화점들은 영업시간을 연장했고 각종 세일행사를 연중무휴로 실시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 실정이다. 불황기에 가장 단기간에 실적을 내고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것이 바로 `바겐세일` 마케팅일 것이다. 끼워주기는 기본이고 각종 제휴서비스 제공과 사은품증정에다 제살 깎아먹는 출혈경쟁을 각오한 밀어내기 판매가 한창이다.
이와는 달리 최근에는 구매력있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소비자 밀착 마케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주로 업계를 호령하는 선두기업들과 고가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이 선별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기업들은 소비자신뢰를 얻기 위해 고객관계관리(CRM)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를 통해 후발업체와 차별화를 꾀하고 선택한 소비자들을 자사의 충실한 소비자로 만들겠다는 의도겠지만 말이다.
어째튼 내수경기가 언제 호전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비심리가 국제통화기금(IMF)수준으로 떨어진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다시 소비를 하도록 하는 묘안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우리사회에 발등의 불로 등장했다. 미래소득에 대한 확실성이 설 때 소비자들은 움직인다. 전체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내게 돌아오는 몫이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소비심리는 살아나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가 이 같은 미래를 보장할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파업공화국이라 할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른 노사문제로 기업들은 투자할 의욕을 잃었고 미래소득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20%의 소비주도층은 소비는 커녕 내돈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소비를 살리는 길은 확실성과 일관성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관성없는 발언이나 정책결정자간의 불협화음은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장없이는 분배도 없고 경제발전 없이는 미래비전도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불황의 극복은 소비자, 넓게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길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고 싶다.
<조희제(생활산업부장) h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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