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라는 어색한 금융 용어가 국내에 들어와 시행된 지 8월 말이면 3년이 된다. 은행(bank) 창구에서도 보험(assurance) 상품을 판매하도록 해 소비자들의 보험상품 선택과 가입을 자유롭게 하고 설계사 의존도를 줄여 보험료를 낮추며 보험업계의 진입장벽을 해제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의도였다. 하지만 보험료 하락의 효과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공룡처럼 비대해진 대형은행들이 보험업을 잠식, 전업 보험사들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비유했듯이 구멍가게로 전락할 처지다. 본지는 방카슈랑스 시행 3년의 빛과 그림자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방카슈랑스 시행 3년 동안 소비자들의 보험상품 선택이 자유로워졌고 중소형 보험업사의 점유율이 확대되는 등 긍정적 측면이 일부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국 은행의 금융산업 독식현상을 가중시켜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방카슈랑스의 남은 울타리를 오는 10월 이후 단계적으로 헐어버릴 예정이다. 따라서 보험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업종간 방벽(fire-wall)을 완전히 제거할 경우 보험시장은 은행과 보험업, 보험업계 사이의 정글과 같은 약탈장이 될 전망이다. 방카슈랑스의 가장 큰 타격은 생명보험업계다. 정중영 동의대 교수(금융보험학)는 “생명보험이 장기상품이고 수수료도 높아 손해보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카슈랑스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초회보험료를 기준으로 할 때 손해보험의 방카슈랑스 비중이 3%안팎에 불과한 반면 생명보험의 방카슈랑스 비중은 50%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연금보험과 변액보험 등등 생보사들이 주력으로 하는 주가연계 보험상품은 방카슈랑스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방카슈랑스가 보험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다. 생보업계가 창구를 은행에 내주는 현상은 앞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될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지난 2003회계연도부터 2005회계연도까지 은행을 통한 생명보험 상품판매 규모가 시행 첫해인 2003년도 전체의 4.9%에 불과했으나 2004년 7.0%, 2005년 7.9%로 상승했다. 이 통계는 방카슈랑스 시행 이전에 계약한 생명보험의 보험료가 포함돼 있어 방카슈랑스 비중이 50%인 신규가입분(초회보험료)이 정기납부분으로 환산되면 생보사의 방카 판매비중 상승 속도가 빨라질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해진다. 방카슈랑스는 삼성상명ㆍ대한생명ㆍ교보생명등 이른바 빅3에 무거운 펀치를 날렸다. 설계사 비중이 높은 빅3 대형사의 방카슈랑스 비중은 지난 3년간 5%를 넘지 못한 데 비해 국내 중소형 생보사들의 판매 비중은 2003년 12.5%, 2004년 18.1%, 2005년 21.9%로 증가했고 외국계 생보사들의 비중도 2003년 8.4%, 2004년 13.7%, 2005년 11.1%를 나타냈다. 대형사에 비해 보험판매망이 취약한 중소형사와 외국계 보험사들이 은행 창구를 판매채널로 활용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는 금융당국의 방카 시행 취지에 적중했다. 방카 시행은 생명보험업계의 판도변화를 가져왔다. 빅3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72%에서 2005년 65.9%로 하락하고 순익도 같은 기간에 2조3,035억원에서 1조2,330억원으로 46.5%나 줄었다. 이에 비해 중소 생보사들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에 13.7%에서 2005년 16.9%로, 순익은 3,351억원에서 3,844억원으로 증가했다.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은 10.5%에서 17.3%, 순익도 1,896억원에서 4,798억원으로 급증했다. 방카슈랑스는 보험아줌마로 통칭되는 보험설계사의 일자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보사들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설계사의 비중을 낮췄다. 중소형 생보사들의 설계사 판매비중은 방카슈랑스 시행 전인 2002년 74.5%였으나 2005년 50.8%로 26.1%포인트 하락했으며 외국계 생보사도 15.6%포인트 줄었다. 이에 비해 대형생보사의 설계사 판매비중은 74.5%에서 70.8%로 변화폭이 비교적 적었다. 생명보험업계 전체로 설계사는 3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방카 영향이 적은 손해보험사들은 설계사 채용를 늘리면서 전체 설계사 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금융감독당국은 방카슈랑스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권인원 금감원 보험검사국 팀장은 “보험사들이 평균 14개 금융기관과 제휴를 통해 방카슈랑스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우려했던 것과 달리 중소형사들이 다양한 판매채널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수익성도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이우철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방카슈랑스 상품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보험사들이 사업비를 줄였다”며 “지난해 이후 5%의 인하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카슈랑스가 보험료 인하를 가져와 소비자들에게 편익을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 업계는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생보ㆍ손보협회의 관계자들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방카슈랑스 도입의 효과로 10% 이상의 보험료 인하 가능성을 예상했다”면서 “하지만 은행들이 판매 수수료 수입을 챙겨 소비자나 보험사에는 별 혜택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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