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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 나춘호 예림당회장] 7. 인생의 지침이 된 외판경험
입력2003-04-13 00:00:00
수정
2003.04.13 00:00:00
한동수 기자
세일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외판경험은 직장 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마케팅부서 직원들을 엘리트 중심으로 엄선하는 것은 이 같은 기업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외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처음 도입된 60년대부터 상당기간은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부분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다가 기본의식도 직장인의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어렵고 힘든 일인데 비해 소득은 변변치 않았으니 인상이 좋을 리가 없었다.
외판을 위해서는 하루에도 수십 집을 방문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정중하게 거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을 붙이기도 전에 냉정하게 쫓아내기도 하고, 자존심까지 상하도록 모멸감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속상해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음에 외판원이 나를 찾아온다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마음만큼은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실제 예림당을 창업한 이후 나는 회사로 찾아와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큰소리를 쳐서 내보거나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준 적이 없다. 사회에 첫 발을 디뎌 외판을 경험했던 청년시절, 몸으로 느끼고 겪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머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외판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사회를 배우고 세상살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와 달리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경험이었으며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는 군대생활 외에 사회경험이 전혀 없었다.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도 제대로 못했지만 외판을 하면서부터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지금도 외판을 1년만 착실히 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인물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남다른 인내심이 필요하고, 특히 성실성을 배제하고는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는 종로 3가에 있던 도서출판 한문당이었다. 이 출판사에는 자본을 투자한 실질 대표인 김우훈 사장과 외판을 전담하고 있는 정종호 사장이 있었다. 어느 날 외판을 나가려는데 김 사장이 눈짓을 하며 따로 만나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모두가 나간 뒤 김 사장과 근처의 다방으로 갔다.
김 사장은 오랫동안 나를 눈여겨봤더니 착실하고 성실해 믿음이 간다면서 카드관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적 외판에서 카드관리는 회사의 자산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 후 나는 수금대상이 되는 카드를 챙겨 수금사원에게 맡기고 저녁이면 수금액과 카드를 받아 정리했다.
잘못된 카드나 수금을 거부하는 카드, 주소불명으로 수금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신경을 쓰이게 했다. 이런 카드는 책을 구입한 사람을 직접 찾아가 만나거나 주소지를 알아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때로 수금 사원들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돈을 유용하고 도망가는 일도 있었는데 수소문해서 찾아가 변상을 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업무 중의 하나는 수금사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수금한 돈을 유용해서 변상을 하라면 윗옷을 벗어 던지며 `가진 건 이것밖에 없다`고 배짱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었고, 가불을 안 해 준다고 몸에 새긴 문신이나 흉터를 드러내 보면서 위압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카드관리를 맡은 지 1년쯤 되어 정종호 사장은 회사를 떠났다. 그러자 김 사장은 카드관리뿐 아니라 외판업무 전체를 나에게 맡겼다. 서적 외판을 시작한 지 1년6개월 만에 출판사 영업부장이 된 것이다.
<한동수기자 best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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