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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정상에서 나도 설화를
입력2004-01-16 00:00:00
수정
2004.01.16 00:00:00
* 2004/1/10(토) 맑고 포근함* 덕유산: 양재 (7:15) - 덕곡 저수지 (10:20) – 능선 (검령?) – 헬기장(13:00) – 설천봉(상제루:13:35) – 향적봉(1614m:14:00)- 중봉 (1594m: 14:20) - 백암봉(송계사 삼거리: 1420m:14:50) – 칠연(안성) 삼거리(15;20) - 칠연폭 입구(16;20) – 안성매표소 (16:40) – 양재 (19:50)
* 안내 산악회 45인 승 2개 버스
* * *
새도, 나무도, 계곡도
숨을 죽이고
있는 산
일렬로
얼음 섞인 덕곡호 지나
길 없는 가파른 오르막길
숨을 몰아쉬어 생기를 불어 넣는다
한시간의 힘든 오르막 후 능선에 서니
뜻밖에 남쪽으로 덕유산 연봉이 빚어 논 설화
여기 저기서 탄성이…
사진 속의 박제만은 아닌 걸 확인
횡재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건가.
볕드는 남쪽과 응달의 북사면은
포근한 봄과 눈 쌓인 겨울.
오늘 덕유의 두 얼굴 모습
헬기장 오르기 직전
마지막 숨고르는 바위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환한 미소의 럽흐페키님
지난 7월 대야산에서 산수국과
조화를 이루며 박힌 님의 사진이
내가 찍은 몇 안 되는 걸작 중 하나
2명 1조에서 5명의 식구 되어
에베레스트 오르는 듯
하얀 눈길 한발 짝씩 조심스레 올라
조망 트인 헬기장에 자릴 잡는다.
가래떡, 바나나로 배를 채우고
기운은 집에서 빚은 진한 포도주로
다시 한번 눈사면 따라 치고 오르니
스키장 정상인 설천봉(1,542m)의 넓은 평지.
북쪽 발아래는 무주 리조트.
젊은 스키어들 슬로프 정상 상제루까지 오르고,
관광객들 곤도라 힘 빌어 겨울산 즐긴다.
산기슭의 회색빛 속에
하얀 눈길 슬로프 길게 뻗었네
요란하게 품어대는 제설기(製雪機)는
눈에 대한 갈증의 표시이겠지.
하지만 활강하며
신나게 내려가는
오색 스키어들이 등산객의 눈길 붙든다.
천년 주목, 구상나무에 핀 뜻밖의 설화…
가까이서 보니 바람이 내린 눈을
날카로운 결정체로 재처리
한 방향으로 매달아
고산 분위기 배가시킨다.
향적봉(1614m) 최고봉은
남녘 지리산을 형님 삼고
동서남북에서 조아리는 고봉들의
신년 인사 받느라 조용하다.
코 앞 중봉이 남으로 또렷
휴게소 등산객들의 컵라면은
내 코를 자극…
그런데 일행은 갈 길을 재촉.
중봉(1594m)의 남서 사면에
펼쳐진 덕유평전,
``후덕(厚德)하고 여유(餘裕)롭다``는
덕유산의 표현.
이는 또한 삭풍이 만들어 놓은
철쭉 분재의 평전.
연분홍 황홀지경의 봄을 꿈꾸고 있겠지.
백암봉(1420m)에서 뒤돌아본 평전은
푸른색 머금은 기고있는 산죽으로
봄 기운인가 착각하기 쉽네.
덕유 등산로에 끊임없이 펼쳐진 산죽
지루워 할 지 모를
산행객 길동무 되고 싶다네
한여름 녹음, 가을 단풍 서양화라면,
남으로 첩첩 능선 회색 파도는
은은한 수묵 동양화
삿갓봉, 남덕유 남으로 두고
동엽령 가기전 우측으로 하산.
삼거리에서 칠연 계곡으로 낙차 심한
오솔길은 수북한 낙엽으로 아직도 가을
가뭄은 칠연계곡 절경을 뺏고,
용추골 깊은 소(沼)의 비취색 물은
6시간 산행객의 마음 적시네
* * *
에필로그
금년은 어디 가나 눈이 적다기에 이번 산행은 강원도 산 보다 길게 뛰는 덕유산을 골랐다. 강원도 겨울산 산행의 4-5시간에 비해 6시간 이상 산을 타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해 늦봄 (5월 31:토) 이 말발굽 모양의 똑 같은 코스를 갔는데 좀 길었다는 생각이었다. 처음 30-40분 가량의 길 없는 오르막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고, 칠연 삼거리에서 하산을 했는데 동엽령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까지도 역시 따분했었다.
정상의 설화 풍경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전날밤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난 후라서 그런 일이 있었나?! 포근한 날씨 때문에 오후에 지기는 했지만… 그리고 중봉 아래에 펼쳐지는 덕유 평전은 이번에도 기분 좋은 곳이었다. 지난 5월에 제대로 보지 못한 철쭉을 다시 봐야 이 곳 평전을 정확히 본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6시간 넘게 타다 보니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 컵 라면도 못 먹고 뒤쳐진 일행 8명에 끼어 제일 늦게 도착했다. 겨울이라 더욱 빡빡했다는 생각이었지만 길어서 좋았다. 하산주가 없어 아쉬움이 좀 남는 산행이었다.
그런데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이 등산로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접근이 쉬워지고 무주 구천동에서 오르는 길이 붐벼 사람을 피해 한적한 곳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는 칠연계곡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두 번에 걸쳐 같은 코스를 타고난 지금 남적유 남쪽 영각사에서 시작 주능선을 따라 향적봉 정상을 밟고 구천동의 삼공리로 내려가는 코스는 필히 한번 타봐야만 ``후덕하고 여유있다는`` 덕유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은 장님의 코끼리 격도 않된다.
그리고 이 산악회가 6월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 씩해서 백두 대간을 할 계획인 것 같다. 최종 결정을 하기 전 여론 조사 중이라는 말. 토요일에 할 것으로 돼 있어 적극 동참해 볼 생각이다. 그 때까지 부지런히 연습하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대간 경험이 빨라질 것 같아 적어도 하반기부터는 산행의 또 다른 맛을 볼 지도 모를 일이다.
<채희묵 코리아 타임스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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