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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허리를 키우자] (상) 성장을 두려워하는 중소기업

"中企 졸업땐 지원 대신 규제" 일부러 기업규모 줄이기 일쑤<br>대출받기도 어려워져 경영여건만 더 악화<br>"中企→대기업 과도기 기업들 지원책 필요"



인천 소재 공구업체 Y사. 수출 중심의 경영전략으로 견조한 성장을 일궈 설립 20여년 만에 매출 1,500억원, 종업원 수 700명에 육박하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대로 글로벌시장에서의 인지도도 상위권에 올라 있는 수출의 역군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는 Y사가 국내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기가 한창 곤두박질치던 지난 연말에는 ‘중소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라는 이유로 외화대출 연장 신청이 거부됐다. 올 초에는 보증기관으로부터 100억원의 지원을 약속 받았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중소기업이 아니니 지원이 어렵겠다는 번복 통보를 받았다.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중소기업 기준을 넘어서는 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Y기업은 당장 급한 자금이 아니어서 경영에 차질은 없지만 “중견기업으로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간접적인 규제는 상당하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중소기업 기준 넘어서면 지원대신 규제가 앞길 막아=중견기업은 한국 경제의 ‘허리’ 같은 존재다. 중소기업의 영세성을 벗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중간 단계에 위치한 중견기업은 기술력과 성장성ㆍ고용창출력 면에서 높은 역량을 보이며 해외 시장에서도 글로벌 경쟁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 경제의 숨은 공신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 경제에서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같은 자금력과 위상도, 중소기업과 같은 정부의 지원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Y사처럼 중소업체로 출발해 남다른 성장을 일궈온 중견기업은 글로벌 시장의 본격적인 경쟁무대에 진입하는 순간 부쩍 어려워진 국내 경영 여건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다. 법적인 중소기업의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정부가 등을 돌리고 그동안의 지원을 대신해 규제가 길목을 가로막고 서기 때문이다. 현행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경우 상시 근로자 수가 300명을 넘고 자본금 80억원을 웃돌면 중소기업에서 제외된다. 특히 금융위기가 터진 후로는 정부와 금융기관의 각종 지원자금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바람에 중견기업들은 탄탄한 신용도에도 불구하고 대출 여건마저 악화된 상태다. 따라서 이 같은 현실은 우리 경제의 ‘허리’를 부실하게 만드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소기업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냉혹한 경영 현실에 노출되느니 성장을 피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러 중소기업에 남기도=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가운데 종사자 300인 미만인 업체 수는 10년 전 278만개에서 2007년에는 319만개까지 증가한 반면 300~999명인 기업체 수는 2,000개에서 2,275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종사자 1,000명 이상인 기업은 아예 481개에서 407개로 줄었다.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할 중견기업층이 얇은 현실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부산 소재 부품업체인 D사 역시 중견기업으로 크기보다는 중소기업으로 남기를 택한 기업 중 하나다. D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매출 700억~800억원대의 수출기업이지만 몇 년째 상시근로자 수는 300명 미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대신 부족한 인력은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충당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중소기업 중 상당수는 D사와 같은 이유로 정규직 채용을 꺼리거나 사업 부문을 분사해 기업규모를 쪼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조병선 기은경제연구소장은 “극단적인 경우 종업원 1~2명이 늘어나서 중소기업에서 제외되는 기업은 경영시스템이나 인력자원 면에서 중소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하루아침에 경영여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중견기업의 벽을 넘지 못해 주저앉거나 일부러 중소기업에 머무르기도 한다”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할 기업들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졸업 기업에도 지원조치 있어야=이에 대해 정부는 기업분할로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해 지원을 받는 기업을 솎아낸다는 취지로 최근 중소기업기본법시행령을 개정, 오는 2012년부터는 ‘중소기업’ 기준에 직전 3년 평균 매출 1,500억원, 자산총액 5000억원, 자기자본 500억원 등의 기준을 추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로 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기업은 1,800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계열사를 포함해 매출 1,500억원 이상인 기업을 중소기업에서 강제 퇴출시켜 대기업으로 간주할 경우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7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 부품소재 업체 사장은 “각자 빠듯한 중소기업끼리 계열사라고 자금이 원활하게 지원되는 것도 아닌데 정부 지원마저 끊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일부 계열사는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며 “적어도 중소기업 졸업 기업들이 과도기를 견딜 수 있도록 조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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