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부실채권(NPL)이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여파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나 은행들은 "가격이 낮다"며 매각을 꺼리고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은행들이 매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NPL은 3조원대로 지난해 수준보다 소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에는 경기침체 정도와 기업 구조조정 속도에 따라 상반기보다 물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이 급증하기 전에 매각을 서둘러야 하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과 불경기로 만족할 만한 가격을 받기 힘들다"며 매각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율 증가속도나 기업 구조조정 추세를 감안하면 부실채권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담보물건의 가치가 많이 하락한 탓에 시장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매각조건이 좋지 않아 자체 매각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은행들이 '적기 매각'과 '높은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을 경우 오히려 매각이 늦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한 대형 회계법인 NPL담당 임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NPL시장이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시장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며 "투자자들의 유동성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인데 은행들이 제 때 높은 가격에 팔려고 욕심을 부린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들어 해외 투자자를 중심으로 NPL에 대한 투자문의는 늘어나는 추세다. 삼일회계법인 NPL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들의 문의는 많아졌지만 매물이 많지 않아 실제 매매는 2월 이후에나 시작될 것"이라며 "투자자는 늘어났는데 매도자들이 아직 시장을 관망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건설사나 조선사 등 구조조정 매물은 하반기 이후에나 쏟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투자자들은 상반기 시장동향을 지켜본 후 하반기쯤 시장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형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대신할 주요 수입원으로 NPL투자를 검토 중이다. 한신ㆍ현대스위스ㆍ진흥ㆍ솔로몬저축은행 등은 이미 NPL시장에 큰 손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은행이 자본확충을 통해 여유가 생겼지만, 부실채권 매각을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일단 부실채권을 덜어내야 추가 부실에 대한 부담이 적다"며 "부실채권을 매각하지 않고 버티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투자자가 나설 때 매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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