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쌀 등 주요 농산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반드시 제외시킬(민감품목으로 배정) 것”이라며 “외교통상부도 이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협상이 우리 의지대로 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민감품목에 들어갈 농축산물 대상 때문이다. 곡물ㆍ축산ㆍ낙농류 등 산업별로 보면 마늘ㆍ양파ㆍ양배추ㆍ당근 등 몇 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품목이 민감품목 지정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FTA에 따라 큰 폭의 수입증가가 예상되는 품목만도 30여종류. 이들 모두 우리 농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식물검역상 국내 수입이 금지돼 있는 신선 사과ㆍ배ㆍ복숭아ㆍ딸기 등에 대해 수입허용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것마저 받아들여질 경우 한국산 농축산물 대다수가 민감품목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미국산과 동등한 경쟁을 하게 된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농축산물 전체를 민감품목으로 넣을 수 없다”며 “특히 한미 FTA의 경우 민감품목 배정 과정에서 국내 농축산업계간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축산ㆍ과일ㆍ낙농 순으로 피해 커=한미 FTA에 따른 경제효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자료가 없듯 농축산도 예외는 아니다. 기관마다 편차가 커 피해액이 최고 8조원에서 최저 2조원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한ㆍ칠레 FTA처럼 피해집단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권오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FTA의 경우 모든 농축산 분야에서 강도만 다를 뿐 고루 피해를 입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렇다 보니 민감품목 배정 기준을 잡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한 분야를 선정, 보완책을 마련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농축산물의 평균 관세율은 46.2%. 자동차(8%) 등 다른 품목보다 고율의 관세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고율의 관세 시스템이 사라질 경우 축산 농가와 감ㆍ귤 등 과수 농가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농축산 업계, 갈등 풀 고리 마련해야=FTA 협상에서 미국이 민감품목 범위를 어느 선까지 인정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과의 협상에서 총 교역상품의 10%, 칠레와는 27%를 민감품목으로 얻어냈다. 미국이 시장개방에 대한 압력을 점점 강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민감품목 범위는 2~3%, 최고 5%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 교역상품은 1만1,261개(HS 10단위 기준). 이 가운데 농축산물은 1,452개로 12.9%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민감품목 범위가 2%선으로 결정되면 농수산물의 10.9%는 즉시 혹은 단기간 에 무관세화되는 셈이다. 5%선이 된다고 해도 7.9%는 개방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한미 FTA가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FTA 협상 못지않게 민감품목 배정을 놓고 벌어질 농축산 업계간 충돌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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