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바통을 이어 4월1일 이성태 전 부총리가 통화 당국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다. 오는 10일에는 새 총재가 주재하는 첫 번째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정돼 있다.
현 총재 임기 동안 통화 정책의 신뢰가 워낙 많이 떨어졌던 점을 감안한 듯 새로운 총재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지만 한은 총재의 역할과 위상을 가장 세밀하고 지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시중은행장들이다. 실제로 한은 총재는 한 달에 한 번씩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통화정책의 흐름을 설명하고 기업과 가계 부분의 자금 상황을 간접적으로 듣는다. 그렇다면 시중은행장들이 이주열 차기 총재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경제신문이 이주열 총재 취임을 앞두고 주요 시중은행장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진 결과 은행장들은 한국은행의 역할을 하루속히 재정립하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입을 보았다.
◇'물가 안정'만이 아닌 경기 흐름과 국제 상황 바라봐야=한국은행법 1조는 한은의 첫 번째 역할로 '물가안정'을 규정하고 있다. 잇따른 금융위기로 중앙은행의 역할은 시스템리스크 감독으로 확장됐지만 한은은 여전히 '물가 안정'을 첫 번째 덕목으로 삼고 있다. 은행장들은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새로운 총재는 한은의 역할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지금까지 한은은 인플레이션에 포커스를 뒀고 글로벌 위기 이후 시스템리스크를 추가했지만 최근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정책을 보면 통화정책의 패러다임이 과거와 다르다"며 "앞으로 어떤 정책의 틀을 갖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줄기에서 "상황 자체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 큰 만큼 물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지속 가능성 경제의 역동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가와 함께 경기 순응적인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시중은행장도 "물가관리가 한은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돼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며 "한은의 시장통제 수단인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제는 새로운 한은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장은 "한은의 여러 미션이 있는데 물가관리에만 너무 협소하게 갇혀서는 곤란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앞으로는 한은이 총액한도대출과 같은 금융중개 기능과 국내은행의 해외 진출을 도울 수 있는 국제적인 중개 기능을 좀더 확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 서두를 필요 없어=은행장들은 한결같이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 은행장은 "미국의 경우 전문가들의 서베이 결과를 보면 60%가량이 내년 3·4분기께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의 경우 선제적인 차원에서 하반기나 내년 초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장은 "총재의 청문회 사전 답변서를 보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주요20개국(G20) 차원에서도 금리 정상화 논의가 많다"면서도 "지금 현재 경제 주체 간 양극화가 심해지는 등 우리의 경제 상황을 보면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았다.
한 지방은행장은 "현장에 나가보면 거래업체 사장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수도권과 달리 지역 경제는 아직까지 바닥에 머물고 있다"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서민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화정책 일관성 필요=한 은행장은 "통화 정책의 타이밍이나 잘잘못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통화 정책의 의사 결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측면이 부족했다. 여기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통위 직후 총재 간담회나 금통위 의사록을 통해 금리의 방향을 점치는데 논리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있었다"며 일관성을 확보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은행장은 한은의 감독기능 강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은이 감독권 강화를 추진하고 금융회사들을 항상 볼 수 있도록 기능을 넓혀달라고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넓고 금감원과의 양해각서(MOU) 등을 통해 기능을 확보할 방안이 다양하기 때문에 구태여 감독권을 강화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