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남자아이를 둔 직장인 김 모(32)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써야 할지 고민한다. 매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가야할지 남편과 다투기 일쑤고 야근할 때마다 친정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통에 이전에는 없던 갈등까지 생겼다. 김 씨의 회사는 중소기업으로 직장어린이집 의무 설치 대상도 아닌 터라 요즘은 직장어린이집을 갖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장보육시설을 갖춘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지만 중소기업 직원들에겐 여전히 꿈 같은 얘기다. 중소기업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집 설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사업장 919곳 중 보육시설을 갖추거나 위탁보육ㆍ수당지급 등으로 대체한 사업장은 683곳으로 74.3%의 이행률을 기록했다. 이행률은 2006년말 47.1%를 기록한 이후 6년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행률을 높인 공신은 국가기관(84.5%ㆍ이하 이행률), 지자체(99.4%), 학교(80.2%)다.
민간기업으로 좁히면 이행률은 62.8%로 크게 떨어지고 근로자 5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좁히면 그 비율은 42.9%로 급감한다. 근로자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이행률이 86.3%로 정부기관 수준인 것과 대조적이다.
중소 제조기업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는 더욱 열악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3월말 기준 국가산업단지 보육시설(국공립ㆍ민간ㆍ직장 포함)은 31곳에 불과하다. 국가산단의 고용인원은 지난해말 기준 107만2,277명에 달하지만 수용 가능한 영유아 수는 2,079명에 불과하다. 비교적 젊은 근로자가 많은 서울디지털단지로 좁혀도 단지 내 9,649개 기업에 15만4,472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4곳에 불과하고 수용 가능 인원은 368명뿐이다.
한창언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과장은 "보육시설 의무 설치 대상 기업이라도 매출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예산이나 공간이 부족해 설치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노동부 등을 통해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중소기업들에 설치비 지원이나 세금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말 기준으로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 사업장 중 미이행 사업장을 공표하고 우수 직장어린이집을 소개해 이행률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한 과장은 "지난 1월말 미이행 사업장을 공표한 이후 보육시설 설치 방법 등을 문의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각 기업에 어린이집 설치를 요청하는 서한도 보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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