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 일어났다.
KB금융지주가 LIG손해보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속된 말로 '서프라이즈'다. 각종 사건과 전산 사태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들이 퇴진 위기에 몰리면서 인수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예상돼왔기 때문이다. KB 직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쾌거'라며 모처럼의 희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찌 됐든 대형 인수합병(M&A) 딜에서 배짱 없는 모습으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던 KB금융이 이번에는 6,000억원대 초반의 베팅에 나서면서 'M&A 저주'를 풀게 됐다. 동시에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로 손보사를 자회사로 두게 되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이번 결과를 놓고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KB)금융지주가 손보사를 인수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는 크지 않다고 분석해왔다. 금융지주의 최대 강점은 은행을 필두로 한 전국망인데 손보업은 방카슈랑스를 통한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B금융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매수자와 매도자 간 이해관계가 가장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B금융은 경매 호가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프로그레시브 딜'이 진행되는 와중에 가격 외적인 부문에 특히 주목했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대주주 측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주주 일가 역시 LIG손보 노조의 강력한 저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가격은 KB금융이 롯데그룹보다 낮았지만 인수 이후 회사의 생존방안을 놓고 대주주 측이 고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이 최종 승자가 된다면 대기업 간 대리전 형태로 전개돼오던 손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LIG손보는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에 이어 손보 업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의 부실경영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2위권에서도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자금력과 금융업 노하우를 갖춘 KB금융으로 편입된다면 LIG손보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손보 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 손보사가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복합금융이 트렌드가 된 상황에서 은행과 카드사·생보사를 두고 있는 금융지주 계열이 된다면 어떤 후폭풍이 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보험산업 전반의 판도에 격변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다만 KB가 LIG손보를 최종 인수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바로 금융 당국의 승인이다.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를 통보 받은 KB가 LIG 손보를 인수하는 데 있어 법률상의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당국은 여전히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재량권을 갖고 있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기관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은 금융회사는 3년 이내 보험사를 인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기관경고를 통보 받은 KB는 인수전에서 자동 탈락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하지만 최근 희소식이 들려 왔다. KB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상의 특례에 따라 기관경고와 관계없이 LIG 손보 인수도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특례는 금융지주회사가 금융 당국의 자회사 편입승인을 받을 경우 대주주 변경 승인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100% 장담할 수는 없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경영실태평가등급을 기준으로 심사를 하게 되는데 기관경고를 받은 금융사의 경우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마지막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당국이 경영 실태를 근거로 M&A를 가로막은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실제로 KB의 LIG손보 인수를 막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천억원대 M&A 문제에 당국이 과도한 입김을 휘두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며 "KB의 조건에 중대한 하자가 없는 이상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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