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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사람] "국내에 골프박물관 생겼으면"

최영정 골프 칼럼니스트


지난 67년 국내 처음으로 중앙 일간지에 골프기사를 실었고 최근 펴낸 ‘유익한 골프용어 정답’을 포함해 15권의 책을 내며 여전히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골프 컬럼니스트 최영정(76ㆍ사진)씨. 그는 용산구 서계동 집필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군살 하나 없이 당당한 그의 모습이 집필실 2개면을 가득 메운 1,200여권의 골프관련 책 앞에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 집안이 힘 좀 썼다”며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본명 최영의)이 내 친형”이라고 소개한 그는 “씨름으로 송아지 타서 학비에 보태기도 했다”고 자신의 소싯적을 회고했다.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67년쯤. “시골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하다가 중앙 일간지 시험을 봤고 유도3단 실력이 반영돼 체육부 기자가 됐다가 골프 취재를 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 지금 서울대 자리에 있던 관악에서 한양, 뉴코리아, 태능 등 몇 개 없던 골프장들을 돌아 다녔다”며 “골퍼가 아니면 클럽하우스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골퍼들은 아무때나 원하는 시간에 라운드 했던”시절이라고 회고하는 데 그가 말하는 것마다 한국 골프의 역사였다. 기억나는 일화로 꼽은 것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씨의 홀인원. “한양CC 파3홀 그린 옆에서 당시 들고 다니던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나중에 보니 필름이 없어서 한 달 동안 피해 다니느라 고생했다”며 웃었다. 직접 골프를 친 것은 69년부터라고 했다. 그는 “68년 멕시코 올림픽 취재 때 골프치는 스포츠 기자가 한 명도 없어 내가 먼저 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 난다”고 옛일을 더듬었다. 그의 골프는 처음에는 무척 쉬웠다고 한다. “70년에 한양CC 대회에서 보기를 12개 하며 B조(핸디캡 10이상) 우승을 한 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골프라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문제”라는 것이 이어진 그의 말이다. 자만은 절대 금물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골퍼가 되면서 성질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그는 “골프가 진실로 자신과의 싸움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길이 열린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골프를 이해하며 그는 베스트 스코어 76타의 실력자가 됐다. “요즘은 한 달에 한번 정도 나가는데 그래도 90타대를 넘기지는 않는다”는 최영정씨. 그는 “사람이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놀이가 골프”고 했다. 이어 “딱 하나 나쁜 점이 혼자하면 재미없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자신의 건강이나 실력 관리뿐 아니라 동료들 건강도 신경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라운드 때만 ‘배려’가 필요한 것이 아닌 듯 했다. 골퍼로서, 또 골프 컬럼니스트로서의 바람을 묻자 그는 “국내에 골프 박물관이 생기는 것을 꼭 보고 싶다”며 “기왕이면 골퍼들이 기금을 모아서 의미 있게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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