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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과학 저버리는 후진 한국

김영걸(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교수)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지난해 정월초 우리 과학계의 대표격인 원로과학자와 말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자청하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신년하례식에 참석, 과학자들과 환담을 나눈 일을 되새겼다. 그가 말하는 김대중대통령 당선자의 과학에 대한 식견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대통령은 나라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메모 한장도 없이 자신있게 피력하고 지원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원로의 말을 빌리자면 『문제는 잘 파악하고 있었고 대책도 제대로 되어 있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실천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과학계는 큰 희망을 가졌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부로 승격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김대중대통령이 우리의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고 믿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움직임을 보면서 그같은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의 여러 구성 집단들이 선의의 경쟁과 절충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모양새만 갖추고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라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불미스러운 일들은 대부분 그같은 민주주의의 악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의약분업 실시 연기, 고소득 자영업 종사자들의 탈세행위를 묵인하는 세제, 법조계의 기득권 지키기 등 수없이 많은 이익집단의 로비활동이 그것들이다. 이들에 비하면 과학자들은 참으로 어린 아기와 같이 무기력하다. 우리나라의 주요 정책 수립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집단(POWER GROUP)모임에 과학을 대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없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간 예는 없으며 낙후된 정치환경 속에서 과학자들의 로비활동으로 과학정책을 제대로 세운 예도 볼 수 없다. 국가 최고책임자의 특별한 관심과 후원없이는 이익집단의 이전투구 마당에서 과학이 제몫을 찾아 발전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60년대의 황무지에서 그나마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한 것은 박정희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집념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근대 프랑스의 과학기술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데는 드골대통령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과학기술부를 해체하고 그 업무를 쪼개서 교육부·산자부 등으로 나누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실망, 무기력감과 함께 이 나라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크다. 우리나라의 고급 연구인력중 70% 가량이 대학에 있다. 그들의 연구능력을 활용하지 않고는 우리가 당면한 경제난국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인식은 희미하게나마 돼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을 제대로 운영하기에도 벅찬 교육부, 대학의 입시제도를 자주 바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교육부에다 대학의 기초과학 육성과 발전이라는 새롭고 중대한 짐을 맡긴다는 것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한 단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가 주요 관심사 밖에 있던 과학을 다룰 전문적 능력과 식견을 배양할 여유가 있었겠느냐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학이 교육부의 수많은 업무중 하나, 그것도 결과가 즉시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뒷전에 밀리기 쉬운 통상 업무의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과학계의 걱정이 크다. 나라의 경제와 안보에 과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세계 정상급에 올려놓았는지 배울 만하다. 이스라엘에선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정부부처(국방·농림·정보통신·교육문화·환경·보건·통상산업부)에 차관보급의 과학관(CHIEF SCIENTIST)실을 둔다. 이들의 활동을 과학기술부가 과학관협의회(CHIEF SCIENTISTS' FORUM)를 통해 총괄, 조정한다. 또한 과학기술부의 고유 역할을 대학의 기초과학연구와 산업계의 독점기술 개발사이의 연결고리로 정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나라의 대통령,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국난을 겪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챙겨야 할 아젠다가 너무나 많다는 것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김대중대통령이 취임 전 당선자로서 우리에게 보여준 과학의 비전을 쉽게 잊을 수 없다. 그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보기 힘들게 변질되지 않도록 한번 챙겨주기 바랄 뿐이다. 과학자들의 로비활동에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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