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이재용 등 과감·신속한 행보로 그룹 난제들 조기 해결 가능케 해
정의선·김동관·이웅열·조현식
동물적 감 없다는 비판 불식하며 특유 뚝심으로 신규사업 속속 진출
그룹 체질 개선 작업에 잰걸음
2·3세 오너 경영인을 바라보는 재계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다. 똑똑하지만 그만큼 이리저리 재느라 과감성이 부족하다는 게 그동안의 평가였다. 해외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경험도 많이 쌓아 이론에는 강하지만 동물적인 '감(感)'은 없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위기 상황에서 돌파하는 능력이 생각보다 감각적이며 탄탄하고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야성'의 DNA도 조금씩 느껴진다. 10대 그룹의 한 사장급 임원은 "경영인의 진정한 진가는 평시가 아닌 전시에 발휘되는 것"이라며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위기를 돌파하는 2·3세 오너들의 행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감각을 단련한 덕분일까.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도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환율 악재 등으로 나빠지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점유율을 사수하는 데 성공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나 한화그룹을 세계 1위 태양광 기업으로 발돋움시킨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김승연 한화 회장이나 신동빈 롯데 회장이나 박용만 두산 회장처럼 이미 안정적으로 그룹을 이끄는 2·3세 오너들도 많지만 그 아래 연배에서도 눈에 띄는 오너 경영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 뛰어넘는 위기 상황 돌파 능력=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23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에 대해 사과했다. 재계는 물론 삼성 내부에서조차 "깜짝 놀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삼성 일각에서는 직접 사과를 말리거나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직접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의 진심 어린 사과는 메르스 관련 삼성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부회장의 과감한 행보는 경영 전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뒤 재계 일각에서는 불안감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아버지의 와병 이후 1년 동안 그룹 사업구조 재편과 과감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삼성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른바 'JY식 경영'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또한 위기에 맞선 과단성 있는 행보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 사장은 메르스 확진자가 제주 신라호텔에 묵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직접 현장으로 내려가 호텔 폐쇄를 결정하는가 하면 지난달 30일에는 중국을 방문해 고위 공무원들과 면담하며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을 장려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시내 면세점 유치전에서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의 협조를 이끌어내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역시 위기를 기회로 만든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케이스다. 박 부사장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을 차례대로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직접 전략을 구상하며 핵심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체질 바꿔라"…M&A 등 신성장동력 발굴 앞장=그룹의 체질을 바꾸거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전통적인 경영전략 측면에서도 2·3세 오너들의 행보는 두드러진다.
올 들어 벌써 세 차례 중국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광폭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충칭 4공장, 허베이 5공장 부지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점검했던 정 부회장은 4월 창저우 공장 착공식, 지난달에는 충칭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5월 경기침체와 환율 악재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를 직접 찾아 현지 판매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던 현대·기아차의 누적 점유율은 4월 14.8%에서 6월 6% 상승한 20.6%를 나타내며 2개월 연속 20%를 유지했다.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는 많지 않은 나이(32세)에도 벌써 '뚝심의 경영인'이라는 별칭을 손에 넣었다. 최근 수년간 태양광 시장 전망이 부정적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잇따른 M&A를 단행해 한화를 세계 1위(셀 생산량 기준) 기업으로 키워낸 공로 때문이다. 적자 상태에서 한화에 인수돼 1년 만에 흑자전환한 한화큐셀은 4월 미국 2위 전력회사인 넥스트에라와 1.5GW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 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태양광 시장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아라미드 등 최첨단 섬유뿐만 아니라 바이오 신약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5월 퇴행성관절염의 바이오 신약인 '티슈진C'가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임상 3상에 돌입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두 아들인 조현식·조현범 사장은 활발한 M&A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은 'M&A를 통한 새 먹거리 창출'을, 동생인 조현범 사장은 '타이어 사업 내실 강화'를 위해 나서 두 형제간 시너지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두 형제는 지난해 12월 4조원에 달하는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인수해 보폭을 넓혔다. 최근에는 물류업계 최대 M&A 매물로 꼽히는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10년 전 모두가 말렸던 저비용항공사(LCC)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제주항공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버금가는 '빅3' 항공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할 정도로 기업에 혁신을 입힌 경영자로 꼽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