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 안정화를 위해 기업의 선물환 규제라는 강수를 꺼내들었다. 시장이 급변할 때마다 '교란의 주범'으로 거론돼왔던 수출 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를 은행을 통해 적정선에서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시장의 투기적 요인을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인데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과 진배 없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왜 선물환 규제인가=조선ㆍ중공업체를 필두로 한 수출업체의 선물환 매도는 환율이 급변할 때마다 시장의 흐름을 왜곡하는 요인이 돼왔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실제로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대에서 1,160원 안팎까지 떨어지는 데도 조선업체들의 선물환 매도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중장기적으로 1,100원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베팅을 한 것이다. 외환 당국의 한 관계자는 "외환시장의 시스템상 수출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는 결국 은행을 통해 현물시장으로 쏟아져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환율 하락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곤 했다"고 밝혔다. 실상 수출업체들의 이 같은 대규모 선물환 매도는 매년 되풀이돼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조선사 등 수출업체를 비롯한 국내 기업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는 지난 2006년 493억달러에서 2007년 718억달러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700억달러에 달했다. 올 들어 환율이 급등하면서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하반기 환율이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늘기 시작해 3ㆍ4분기 현재까지 123억달러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선물환 매도가 단순히 외환시장의 변동성, 즉 환율 하락만을 촉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G기업의 경우 수출 물건을 팔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정 수준 수출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선물환 매도를 하는 일종의 '공매도'를 함으로써 시장에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외환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는 분명 투기적 거래"라고 못박았다. 간신히 계약을 연장해 파국을 피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파산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이 다른 수출기업, 특히 조선업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배를 수주도 하지 않았는데 계속 팔릴 것으로 보고 환율 하락에 베팅을 하며 선물환을 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못하도록 사전적으로 쐐기를 박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인 셈이다. ◇어떻게 규제하나=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6일 국회 경제정책 포럼에서 "조선사와 은행 간의 선물환 계약 등 금융위기 당시 외화유동성 문제를 일으킨 미시적 원인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사 등 기업을 직접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은행이 일정 수준 이상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간접적이고 미시적인 규제ㆍ감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외환거래의 물량을 은행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출 기업이 은행에 선물환 매도를 하려 해도 은행이 일정 수준의 한도를 설정, 이를 넘어설 경우 매도 물량을 받아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출 기업으로서는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선물환 매도를 통한 환시장 참여가 사실상 봉쇄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민간시장의 외환거래를 사실상 통제한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그러나 "기업이 환시장에서 투기를 하면 곤란하지 않느냐. 국가 경제로서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고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올바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만 선물환 시장의 이 같은 규제와 달리 관심을 모아온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하지 않는 쪽으로 다시 한번 방침을 정했다. 진 위원장은 이날 "단기적으로 외은 지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굉장히 어렵다"며 "당분간은 영업 보고 의무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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