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이 2일 지속되는 유동성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채권단 자율협약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그룹을 조선사업 위주로 재편하려던 STX그룹의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조선과 해운을 주력으로 하는 STX그룹은 이미 해운사인 STX팬오션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그룹의 양대 주력이었던 해운사업을 포기하고 STX조선해양의 조선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공개 매각을 추진한 STX팬오션은 단 한 곳도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다. 여기에 STX조선해양마저 채권단 공동 관리를 받게 돼 계열사와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잇따른 기업 인수합병(M&A)를 통해 STX그룹을 재계 순위 12위로 키워낸 강덕수 회장의 성공신화가 최대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STX조선해양 자금난 못 이기고 채권단에 SOS=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에 자율협약 체결을 신청한 것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STX조선해양은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수주난에 금융시장 경색까지 겹치면서 경영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선박대금 결제조건이 선수금 비중은 줄고 선박 인도 시 받는 비중은 높아지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현금 유입이 급감, 자금난이 가중됐다.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6조2,212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각각 6,987억원, 7,820억원에 달하는 등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또 지난해 말 기준으로 단기차입금 규모만 1조1,236억원에 이른다. 다음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잔액은 9,950억원인데 이 가운데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하는 자금만 6,500억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으로 영업을 통해 들어오는 돈은 줄고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은 늘어나는데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막히면서 결국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STX다롄 지분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불가피= STX조선해양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경영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협약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비해 법적 구속력은 낮다. 하지만 채권단은 자금 지원에 따른 자구 노력과 구조조정을 강하게 요청할 수 있다. 채권단과 기존에 맺었던 재무구조개선약정보다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STX조선해양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조선소인 STX다롄의 지분매각 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STX그룹은 지난해 말 STX다롄의 지분 매각을 추진했으나 투자자들과 가격 및 조건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자율협약 체결로 채권단은 STX다롄 지분 매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선 STX다롄 지분 절반 이상을 매각해 경영권까지 넘기는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향방도 변수= 채권단 자율협약이 추진될 경우 STX조선해양의 경영권 향방도 변수다. 현재 STX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지분 30.58%를 보유한 지주회사 ㈜STX다. 우선 STX그룹이 채권단의 신규 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STX조선해양의 경영권을 내놓은 방안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과 STX그룹이 보유한 STX조선해양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고 자구 노력에 실패할 경우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는 방식이다. 이는 채권단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채권단의 신규자금 투입 전에 STX조선해양의 기존 대주주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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