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6년 국민계정(잠정)’은 거시 경제지표는 좋은데 민생이 어려운 이유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 규모가 커져도 국민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는 현상이 11년간이나 지속되다 보니 체감경기가 바닥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다만 지난해 4ㆍ4분기부터 유가 안정 등으로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있어 이 같은 ‘소득 없는 성장’ 구조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비록 환율 하락 덕분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연말에 2만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4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다소 웃돌면서 경기둔화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소득 없는 성장’ 언제까지=지난해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2.3%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95년(GDP 성장률 9.2%, GNI 증가율 9.5%) 이후 11년째 GNI 성장률이 GDP 성장률을 밑돈 것이다. 이는 기계류, 정밀기기, 반도체 및 통신기기, 컴퓨터 등 주요 품목의 수출 가격이 하락한 반면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은 오르면서 교역조건이 악화된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실은 68조원으로 2005년의 46조원에 비해 크게 늘어나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전년에 비해 22조원 이상의 소득이 해외로 더 빠져나가면서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되는데다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률에도 못 미치니 체감경기가 나아질 리 없다는 얘기다. 다만 이 같은 ‘소득 없는 성장’ 구조가 지난해 4ㆍ4분기부터 다소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지난해 실질 GNI 증가율 2.3%는 2005년 0.7%에 비해서는 크게 개선된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4ㆍ4분기에는 GNI가 전기 대비 2.5% 증가, 19분기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0.9%를 크게 앞질렀다. 이광준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는 유가가 안정되고 반도체 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GDP와 GNI간 격차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회복시점 빨라지나=경기조정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지난해 4ㆍ4분기 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9%로 1월 말 제시된 한은의 속보치인 0.8%에 비해 다소 높았다. 이는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이미 접어들었다는 민간연구소들의 주장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실적이다. 지난해 국민계정을 지출항목별로 보면 건설투자(-0.4%)의 부진이 이어졌지만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증가세가 확대됐다. 재화수출(12.6%)도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4.2%로 전체 성장률에 미치지 못했지만 분기별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설비투자도 7.6%로 호조를 보였다. 수출과 수입은 모두 10%대 이상 증가했다. ◇연말 국민소득 2만달러 돌파하나=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1만8,372달러로 전년 1만6,413달러보다 11.9% 증가하면서 2만달러 진입을 눈앞에 뒀다. 물론 달러 기준 소득이 늘어난 것은 환율 하락 덕이 크다. 지난해 국내총생산(명목GDP)은 847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6%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연평균 6.7%나 하락하면서 국민소득 급증을 이끌었다. 실제 1인당 국민소득을 원화로 환산할 경우 2005년 1,681만2,000원에서 지난해 1,755만5,000원으로 4.4% 증가하는 데 그쳐 경제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에 2만달러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 국장은 “올해 경제성장률 4.4%가 달성되고 원ㆍ달러 환율이 연평균 930원 정도를 나타내면 ‘숫자상’ 2만달러 달성은 연말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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