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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백지화] 중심 못잡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좀비기업 정리 첩첩산중

"회사만 만들면 된다" 안일한 탁상행정에 제 발등 찍혀

취임 공약 내세웠던 임종룡 금융위장 리더십도 생채기

잘못 끼운 단추 고쳐 끼운 건 긍정적… 10월 운영안 제시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설립하는 대신 유암코를 확대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명분보다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실리를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추진했던 계획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이제라도 빨리 고쳐 끼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명순 금융위원회 구조개선정책관은 "유암코의 대출약정을 확대하고 잔여분에 대한 은행 출자가 이뤄지면 당초 설립안과 비교해 자금규모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면서 "오는 10월 중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정책신뢰도는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탁상행정으로 일을 진행해온 관행이 다시 한 번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이 한국 경제의 숨은 뇌관으로 떠오른 가운데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은 앞으로 구조조정의 추진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을 취임 직후 최대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워온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리더십에도 생채기가 남았다.

금융당국이 17일 은행연합회의 건의를 전격 수용한 데는 예산과 인력 마련의 부담이 크다는 은행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당초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등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에 참여하기로 한 8개 은행들은 각각 1,200억원씩을 출자해야 했다. 저금리 기조로 가뜩이나 영업이 어려운데다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기도 힘든 구조조정전문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여기에 구조조정전문회사보다는 유암코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낫다는 의견도 반영됐다. 기업 재무안정 펀드를 운용한 경험이 있는데다 자금동원 능력 측면에서도 직접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암코라는 유사한 회사를 둔 채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는 게 자칫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은행권의 현실적 여론을 수용했음에도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난제를 앞에 두고 컨트롤타워인 금융당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방안을 하루아침에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향후 한계기업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계기업 정리라는 큰 방향에서는 은행들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면서 "유암코의 기능을 확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시장에서는 상식으로 통했다"고 전했다. A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도 "'회사 하나 만들면 된다'는 전형적인 관 중심의 탁상 행정의 예상된 결과"라며 "일단 당국이 아이디어를 내놓고 업계가 따라오라는 행태가 되풀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까지 불과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입장을 수용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태스크포스(TF)가 구조조정전문회사의 구체적 기능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고 공청회도 진행됐기 때문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1~2년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유암코의 기업 구조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만큼 앞으로 세부전략을 어떻게 짤지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의 승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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