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사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5일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본질은 유동성이 아니라 펀더멘털의 문제"라며 "과거 대공황 때보다 위기 상황이 더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금융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유럽 사태가 대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미칠 것"이라며 경고음을 울린 데 이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입안한 강 회장까지 세계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강 회장은 이날 "아프리카 출장을 다녀온 소회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기자실을 들렀다. 하지만 강 회장의 발언은 최근 그렉시트ㆍ스펙시트(그리스와 스페인의 유로존 이탈)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위기에 집중됐다.
강 회장은 작심한 듯 "이번 위기는 지난 1929년 대공황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1시간가량 위기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는 "대공황은 금융시장이 각종 투기와 루머로 혼란해지면서 발생했고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펀더멘털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경제가 10년 이상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현 위기 상황이 국가 간 불균형에서 기인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솝우화에 빗대자면 미국ㆍ영국ㆍ남유럽은 베짱이처럼 놀고 먹고 독일ㆍ중국ㆍ일본은 개미처럼 일만 한다"며 "이 때문에 일어나는 글로벌 불균형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결책은 (미국ㆍ남유럽 국가의 국민들이) 현 임금 수준에서 일을 더하거나 임금을 깎거나 투자를 하는 것인데 쉽지가 없다. 미국은 주택ㆍ자동차 등을 미래소득(대출)으로 당겨 쓰는 외상소득(Borrowed Income) 경제, 남유럽 국가는 일을 하지 않고 정부재정이나 복지에 의존하는 불로소득(Unearned Income) 경제, 일본은 엄청난 정부부채로 미래 재정을 앞당겨 쓰는 외상재정(Borrowed Revenue) 경제"라고 평가했다.
강 회장은 또 "선진국 경제는 생산성의 문제지만 신흥국 경제는 소비의 문제"라며 "중국은 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가 투자여서 투자를 더 늘릴 여력이 없고 국민연금ㆍ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아 소비를 늘리기도 어려우며 미국ㆍ유럽이 위기에 빠져 있어 수출을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어 세계 경제가 단기간에 안정적인 회복세로 돌아서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강 회장은 "인간은 결코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풍요와 평화가 지속되면 나태해지고 퇴폐해진다. 해결책은 결국 나태와 퇴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로존 위기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는"유로화의 본질은 유로존이 깨지느냐,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탄생하느냐의 문제"라며 "남북전쟁 때 미국이 남부 주정부의 재정보조로 북부 주정부를 지원했던 것처럼 북유럽이 남유럽을 지원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는 "외국인투자가들은 한국이 가장 역동적이며 한국 외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고 한다"면서도 "다만 주식시장은 유럽의 상황에 따라 자금 유출입이 반복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산은금융지주 기업공개(IPO)와 관련해 강 회장은 "IPO와 민영화는 전혀 별개"라며 "연말 IPO에서는 최대 30%의 지분만 민간에 팔 예정이며 민영화는 차기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못 박았다. '공모가가 장부가치에 비해 크게 낮을 경우에도 IPO를 강행하느냐'는 질문에는 "최근 방문한 금융기관 중에도 (산은지주 IPO에) 관심을 보인 곳이 있다"며 "좀더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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