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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관치 이어 '政의 治'에 휘둘린다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사태 이후 정부의 거센 입김에 압박을 받아온 국내 금융기관들 이제는 정치권의 직접적인 개입에 노출됐다. 여권 실세들이 서민지원, 공정거래 등의 각종 명분 아래 입법권을 무기로 공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금융이 관치(官治)를 넘어 ‘정(政)의 치(治)’에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3면 그동안 금융계는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양극화의 음지에 있는 서민들을 외면한 채 수년간 막대한 수익을 기반으로 일반 정서를 거스르는 과도한 임금인상 및 상여금 잔치를 펼쳐왔다. 이에 대해 사회적 힐난이 금융권에 집중됐지만 정부나 정치권이 이를 바로잡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을 펼치기 보다 오히려 ‘빌미삼아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습’으로까지 비춰진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은행권이 출시하기로 합의한 새희망홀씨 대출. 은행 영업이익액의 일정분을 떼어서 그동안 은행이 외면해왔던 저신용 서민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준다는 명분의 금융상품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발적 합의가 아니라 강압에 가까운 정치적 요청에 굴복한 결과물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이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서민계층에 대출하지 않는 은행에 미달금액의 절반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이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입법권을 무기로 한 정치권의 금융 시장 개입은 비은행권에서도 공공연하다. 이에 앞서 지난해 논쟁거리가 됐던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상한제 도입방안(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법안의 입법화는 무산됐지만 카드사들은 여권 핵심인사가 추진해온 법안의 취지를 무시할 수 없어 가맹점수수료율 공시체계를 개선하는 등 일부 내용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은행권의 한 임원은 “관치는 그나마 형식과 절차를 갖추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최소한의 소명기회라도 주어진다”며 “그러나 정치권의 금융시장 개입은 관치보다 더 중구난방이고 카드수수료 처럼 이미 논의가 끝난 이슈를 매년 앵무새처럼 또 다시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금융사로선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권의 금융시장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잦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 금융위기 이후 정부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어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책임을 민간 부분에 전가시키고 싶은 유혹은 더욱 커졌다. 특히 여권이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차기 대선을 고려한 민심 잡기 차원에서 서민 관련 금융이슈들을 지속적으로 꺼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시장논리와 상충하는 방안들이 속속 현실화할 경우 금융사들의 수익기반 약화와 리스크 노출로 자칫 사회적 비용만 커질 수 있다. 정치권의 개입은 금융계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이건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금융기관들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나서서 서민 지원에 나섰다면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을 불러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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