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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曲學阿世
입력2003-12-26 00:00:00
수정
2003.12.26 00:00:00
또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다. 참으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한 해였다. 새해에는 경제도 정치도 제자리를 찾아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름지기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나 이제나 지식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자신이 배운 바를 옳은 일을 위해 쓰는 것이다. 따라서 새해에는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지식인들부터 없어졌으면 좋겠다.
곡학아세란 배운 바를 굽혀 시류에 아부한다는 말이니, 출세를 위해 자신의 학문을 팔지 말라는 말이다. 오늘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지도층에 속한 사람 모두가 좋은 학교를 다니고 많이 배웠다는 지식인인데, 존경 받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곡학아세의 경구를 마음깊이 새기지 않은 듯하다.
이 고사성어의 출전은 사마천(史馬遷)의 `사기(史記)`유림열전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중국 전한의 경제(景帝, 재위 기원전 157~142년)는 즉위하자마자 지혜롭고 어진 인재를 널리 구해 등용했는데, 원고생(轅固生)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시인이었던 원고생은 조정에 발탁되었을 때 이미 9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경제가 원고생을 박사로 등용하여 총애하자 어느날 경제의 모후인 두태후(竇太后)가 원고생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원 박사는 노자(老子)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때 두태후는 노자의 무위사상에 심취해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원고생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태후가 노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평소 생각을 굽힘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노자 같은 인간은 소인배나 다름없는 작자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남을 속이는 말에 지나지 않으니, 적어도 천하사를 논하는 선비라면 문제로 삼을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자 두태후가 노발대발하여 이렇게 호통쳤다. “아니, 이런 불손한 자를 다 봤나! 내가 존경하는 노자를 소인배라 하다니! 여봐라, 저 자를 당장 하옥하라!”그렇게 해서 원고생은 감옥에 갇혀 돼지를 잡는 일을 맡게 되었다. 두태후는 원고생이 90고령이니 돼지 잡는 일을 제대로 못하면 다른 형벌을 주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고생은 이를 딱하게 여긴 경제가 넣어준 날카로운 칼로 마치 타고난 백정처럼 돼지를 잘도 잡았다. 이 일을 안 태후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용서하고 박사 자리에 되돌아오게 했다.
원고생의 강직함을 알게 된 경제는 그를 더욱 신임하고 총애했다. 원고생이 이처럼 권세를 두려워하거나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직언을 잘 했기에 머리는 비고 배에는 욕심만 잔뜩 든 학자나 관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조정에서 쫓아내려고 온갖 험담과 모함을 다 했다.
경제가 또 공손홍(公孫弘)을 발탁했는데, 재주가 뛰어난 공손홍은 곧 소장파의 대표가 되었다. 공손홍도 원고생을 처음 만나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저런 늙은이와 함께 일을 해야 하나`하고 속으로 매우 불만스러워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경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고생은 저승길이 멀지 않은 노인이니 시골로 보내 증손자 재롱이나 보게 하소서!”
그러나 경제는 그 말을 못들은 척하고 오히려 원고생의 벼슬을 박사에서 대부로 높여주었다. 얼마 뒤에 원고생이 공손홍을 만나 이렇게 타일렀다. “요즈음 학문이 매우 어지러워지고 있네. 이대로 가다가는 현인들이 세운 학문이 요사스러운 학설에 밀려 쓰러져버릴 판이야. 그대는 학문이 높고 심지가 굳다고 들었네. 원컨대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나!” 이것이 곡학아세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명나라 사람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 첫머리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쓸쓸함이 있을 뿐이지만, 권세에 의지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영원히 초라하고 처량하다. 달인은 우주를 초월한 불변의 진리를 꿰뚫어보고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한다. 일시적인 쓸쓸함을 겪을지언정 결코 영원히 후회할 처량함을 택하지 말라`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자의 리더십도 큰 문제지만, 지식인들이 명분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절실한 난세다.
<황원갑(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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