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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오래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응급실을 갖춘 큰 병원 근처에 집을 구해라.’ 이 문구는 어느 종합병원의 광고 카피가 아니다. 지난해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 중 하나인 영국 셰필드 대학 연구팀이 학계에 공식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 최근 셰필드 대학 의료연구센터의 존 니콜 박사 연구팀은 응급의학저널(emergency medicine journal)에 게재한 ‘병원과의 거리와 응급환자 사망률의 상관관계’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응급환자들의 사망률이 병원 도착시간과 정비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영국 내 앰뷸런스 서비스 업체 4곳을 대상으로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긴급 수송된 응급환자 1만315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앰뷸런스에 탑승한 장소로부터 병원까지의 거리가 10km 멀어질 때마다 사망률이 1%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병원에 신속히 도착하지 못하고 앰뷸런스에 오랜 시간 타고 있을수록 죽을 확률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심각한 호흡기 질환에 걸린 환자들의 위험은 더욱 크다. 병원이 20km 이상 떨어져 있을 경우 이들의 사망률이 여타 환자들에 비해 무려 20%나 상승한 것이다. 물론 병의 종류를 불문하고 응급환자들이 가능한 빨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팀은 이 뻔한(?) 결과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과 자금을 투자했다. 왜일까. 의료진 인력 부족과 운용비 부담을 이유로 응급실 운영을 포기하는 중소병원들의 숫자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실제 영국의 경우 영국보험관리공단 차원에서 중소병원들의 응급실을 없애고 도시 중심에 위치한 대형병원 한곳에만 남겨 놓는 일명 ‘응급실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니콜 박사는 “첨단의료설비를 갖춘 대형 병원만으로 모든 지역의 응급환자를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라며 “고급의료센터와 함께 소시민들이 즉시 찾아갈 수 있는 작은 응급시설이 공존해야만 더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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