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채용제도 변화를 모색하게 된 이유는 지난해 상하반기 두 차례 치러진 삼성 채용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무려 20만명의 지원자가 몰리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은 지난 15일 서류전형을 도입해 SSAT 응시생 수를 크게 줄이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서류전형이 이른바 '스펙'에 좌우될 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을 감안해 대학 총장들이 추천하는 5,000명의 학생들에게 서류전형 없이 SSAT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총장 추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삼성의 생각과 달리 대학 총장 추천제는 삼성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회적 반발을 불러오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발단은 삼성이 각 대학에 통보한 대학별 추천인원 수가 외부로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대학별 추천인원은 성균관대가 11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대와 한양대 각 110명, 연세대·고려대·경북대 각 100명 등의 순이었다.
대학별 추천인원 수가 공개되자 즉각 대학과 정치권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삼성이 대학을 서열화하고 호남 지역 대학과 여대를 차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삼성이 대학 서열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며 삼성 채용제도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올려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나섰다. 영남 지역 대학에 비해 추천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호남 지역 대학과 여대들도 삼성의 방침에 거세게 반발했다. 또 강운태 광주시장은 "삼성의 채용제는 배려와 공생 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야권도 "삼성이 대학 위에 군림하려 한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삼성은 대학별 추천인원은 최근 대학별 입사자 수와 이공계 학생 규모, 특성화학과 설립 여부 등을 기준으로 배정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삼성은 결국 총장 추천제를 포함한 새 채용제도 개선안을 전면 백지화해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 사장은 "총장 추천제는 스펙으로 드러나지 않는 훌륭한 인성을 갖춘 학생을 추천받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역풍에 직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장 추천제에 대한 삼성의 미숙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별 자율에 맡겨도 될 추천인원을 삼성이 일방적으로 지정해 줘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삼성이 애초에 대학별로 추천인원을 할당하지 말고 일단 대학들이 인원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학생을 추천하도록 한 뒤 추후 대학별 입사자들의 근무태도 등을 감안해 대학별 추천인원을 내부적으로 정했다면 이 같은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성의 채용제도 개선안은 취업 열기 과열에 따른 사회적비용을 줄여보려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2주일 만에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관련 업계에서는 취업 준비생들이 삼성 취업 준비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연간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시중 서점에는 권당 2만~5만원가량 하는 SSAT 관련 문제집이 50여종 넘게 나와 있는 실정이다. 또 SSAT 준비를 위한 사설 학원도 성업 중인데 학원 강의료는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25만원에 이른다. 이에 연간 20만명에 달하는 삼성 취업준비생들이 평균 두 권가량의 SSAT 참고서를 구입하고 일부가 학원 강의를 듣는다고 가정할 경우 취업준비생들이 치러야 할 비용이 연간 100억원 이상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여기에 삼성 역시 SSAT 고사장 대여와 고사장 인력 관리, 시험지 인쇄 및 배송 등에 연간 100억원가량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의 직접적인 준비 비용과 시험을 위한 상경 비용은 물론 삼성의 관리 비용, 인력 자원 낭비 등을 모두 감안하면 기존 SSAT 체제 유지로 인한 사회적비용은 연간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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