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을 달궜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당시 대형 은행 계좌 폐쇄 바람이 불었다. 어려울 때 우산을 뺏는 대형 은행에 대한 분노였다. 은행을 나온 이들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신용협동조합이었다.
미국에서는 반(反)월가 시위를 계기로 시작된 '은행 계좌 전환의 날' 이후 단 두 달 만에 120만명의 신규 조합원이 신용협동조합으로 유입됐다. 직전연도 연간 가입자가 6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2년에 해당하는 신규 가입자가 증가한 셈이다.
지역밀착형 상호금융이 '대안금융'으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였다.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협동조합의 가치가 빛을 발한 것이다.
선진국의 신협들은 이 같은 원칙에 충실한 운영과 지역 환원 사업 등을 통해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 신협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밴시티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녹아든 대표적인 신협이다. 1946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대의 단위 신용협동조합인 밴시티는 대출과 투자·기부 등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 건설을 추구한다. 종업원을 존중하는 회사와 친환경적인 회사, 세계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회사 등에 대출과 투자를 하고 있으며 순이익의 30%를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1994년부터 2억2,000만달러의 장학금을 지원했고 1989년에는 체계적 봉사활동을 위해 100만달러를 기부해 밴시티지역사회재단을 설립했다. 또 30여개의 사회적 기업 자립을 지원했다.
최갑률 신협중앙회 조사연구실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은행과 같은 수준, 같은 방식의 건전성 규제로 협동조합만의 차별화된 시도가 어렵다"며 "협동조합 자체적으로 인력 양성과 시스템 개발 노력을 해야겠지만 협동조합에 대한 제도적 유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현재 신협 입장에서는 소득자나 우량 신용등급자를 대상으로 한 영업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복지 소외 계층에 대해서는 사회공헌 법인을 세워 지원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운영 방안"이라고 말했다.
전국 1,402개 지점과 1만7,590명의 회원이 있는 새마을금고 역시 고민이 깊다.
소관부처인 안행부와 새마을금고는 2010년부터 해마다 각각 100억원씩 매칭해 지역희망금융사업·희망드림론 등을 운영해왔다. 신용등급 6~10등급의 무등록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지역희망금융사업으로는 2,028억원을 대출했고 구제역이 발생한 2011년에는 농수축산·유통·금속가공 등 일부 업종 종사자를 대상으로 1,436억원을 대출했다. 올해도 내년을 목표로 창업자금을 대출해주는 상품을 안행부와 협의 중이며 엄격한 서류심사보다 정성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하반기 중 해당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의견 등을 반영해 대출을 해주는 소액신용대출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아직 관계형 금융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방법도 없어 정성평가 방법을 개발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며 "정부에서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어준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고 전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농어촌 곳곳에 지점망을 갖고 있는 농협이나 수협·축협 등 협동조합이야말로 관계형 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를 갖춘 금융회사"라며 "작황이 어떤지,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근접거리에서 판단하기가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큰 금융사와 달리 지역법인으로 운영되는 만큼 영세하고 신용도를 심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며 "무턱대고 관계형 금융을 하라고 하면 엄청난 부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담보대출을 한 사람이 추가 자금이 필요할 때 추가 신용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접근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민금융의 또 다른 구역인 대부업계에서는 러시앤캐시 등 대형사들이 속속 저축은행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빈자리를 중소대부업자 공동 브랜드를 론칭, 대응해나가는 모양새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자산규모 20억원 이하의 작은 대부업체들이 대형사들이 갖고 있는 영업 시스템과 시설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며 "10월 중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올해 말까지 공동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