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최모(31ㆍ서울 동대문구)씨는 최근 강남의 유명 돌잔치 전문 레스토랑에 예약 문의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미 내년 4월까지 돌잔치 예약이 마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심지어 어떤 곳은 내년 8월까지 주말 예약이 꽉 차 있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장소를 물색했을텐데…"라며 혀를 내둘렀다. 평균출산율 1.08명의 저출산 시대. 이처럼 각 가정의 자녀 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지만 부모 어깨 위에 얹힌 자녀 양육의 짐은 오히려 무거워지고 있다. 일부 부유층에서 시작된 외둥이에 대한 '극진한' 양육 방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백일ㆍ돌잔치 장소에서부터 어린이집ㆍ학원ㆍ입시설명회장까지 내 자식에게 '더 나은' 곳을 제공해주기 위한 부모들의 양육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후 3개월 된 아들을 둔 주부 유모(29)씨는 요즘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유씨는 "대기업이나 명문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곳 뿐만 아니라 웬만한 구립 어린이집도 아이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며 "3~4년 대기해야 한다는 데 이미 늦은 건 아닌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뿐만 아니라 유명 과외 학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서울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은 내년도 5세반 원아 모집을 20분만에 끝냈다. 전직 국가대표 선수가 운영하는 어린이축구교실에는 평균 200명 정도의 어린이가 '빈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어린이 강좌도 입소문 난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접수 시작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번대 대기 번호표를 받기 일쑤다. 지자체나 국공립 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체험학습 등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도 재빠른 예약이 필요하다. 자녀가 중ㆍ고등학교를 가서도 부모들의 줄서기는 계속 된다. 특목고, 대학 등의 입학 정보를 얻기 위한 설명회 참석도 사전 예약이 필수다. 심지어 일부 부모들은 유명 과외교사 섭외를 위한 대기표까지 챙긴다. 직장인 박모(35)씨는 "가끔은 아들 하나 키우자고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주변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해진다"며 "자녀 양육의 기본은 '줄서기'란 말이 실감난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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