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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8월12일 오후7시45분. 김영삼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바로 '금융실명제'였다.
헌법76조1항의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으로 시행된 금융실명제법의 정식 명칭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로 가명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위반 때 처벌하는 등 경제질서를 순식간에 바꿔버린 금융 개혁이었다.
금융실명제로 충격이 가장 컸던 곳은 증권시장이었다. 1993년 당시 증시는 코스피지수가 1989년의 1,000포인트 선 이후 456포인트까지 하락한 다음 반등 국면에 들어서던 때였다. 금융시장의 충격을 예상한 당국은 모든 금융기관의 개점 시간을 오후2시로 늦췄다. 2시10분에 개장한 증권시장은 폭락세를 보였다. 32포인트나 폭락하는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으며 917개 종목이 하한가였고 상승 종목은 전무했다. 거래대금도 233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거래가 실종됐으며 이틀간 8.16%의 폭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미 대세 상승기로 돌아선 증시의 체력은 강했다. 월요일 개장한 증시는 25포인트의 급등세로 돌아섰다. 경제 여건도 양호하고 금융실명제가 장기적으로는 증시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며 증시가 상승세를 타자 이탈했던 증시 자금도 속속 유입되며 예탁금도 급증했다. 결국 증시는 1년 넘는 상승세를 보이며 1,000포인트 돌파는 물론 이듬해 11월에는 사상 최고치인 1,145포인트까지 올라갔다.
증시가 금융실명제라는 핵폭탄급 악재를 극복한 것은 대세 상승 국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실명제가 지하금융을 양성화해 증시 체력을 더 강하게 할 장기적인 호재였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최근 지하경제 양성화에 나선 박근혜정부는 세원 발굴 차원에서 차명거래를 통한 탈세와의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고 선물옵션에도 거래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단기적으로 증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또한 장기적으로는 증권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1993년의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정부의 자신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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