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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산업과 벤처캐피털

10년 전 일본 경단련(經團連) 파견근무 중 한 일본인 경제전문가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 3개의 한국기업을 연구 중이었던 그는 연구의 일환으로 나를 만났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욱일승천 기세로 잘 나가는 기업이 있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도시바, NEC가 점차 힘을 잃고 있던 분야였던 D램을 만드는 삼성전자, 한국의 조선 수주량이 일본을 누르기 시작했던 당시 시점에서의 현대중공업, 세계 최대의 자리를 한국에 넘겨준 닛데츠(新日鐵)의 상대 포항제철이 그의 연구대상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불황 때 일본의 라이벌 기업들은 불황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고 투자를 줄인데 반해, 한국 기업들은 투오히려 투자를 늘린 것이 경쟁력의 요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 기업에는 없는 한국 기업들만의 오너십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검증하고 싶어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물론 나는 거기에 동의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적 결정체로 그룹경영체제까지 언급했다. 그때 그 일본인 친구가 지적한 기업과 산업은 지금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주력군(群)이라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참으로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어려움에 빠진 우리 경제의 회생 돌파구로 신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등 10대 신성장 동력산업을 확정했다. 국제회의도 유치해 쟁쟁한 석학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날로 심화되어 가는 경쟁과 사회 정치적 요인이 불러 일으키는 불확실성의 증대 속에서 이런 차세대 신산업에 대한 고민은 사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신산업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 될수록 더욱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려야 할 벤처라는 단어가 사라져버려 유감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벤처산업을 키운다는 것과 같이 해석되어야만 한다. 벤처산업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고 전체 산업의 어려움을 극복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나가는 데 주력군이라는 이유로 더욱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벤처는 규모에 따라 분류되는 기업이 아니라 도전과 열정의 기업가 정신을 말한다. 반도체나 조선은 모두 벤처정신의 발현이었고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은 위대한 벤처기업인 이었다. 지난 89년 미국의 록펠러 센터가 일본의 미쯔비시에 매각될 때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혼이 팔린다고 자조했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인들은 정보기술 산업에서, 바이오산업에서, 소위 신산업으로 명명되는 벤처 붐을 일으켜 제2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 AOL, 오라클, 썬 등 신경제의 주역들은 자체 기술로 세계 표준을 만들어갔고 표준화된 기술로 세계 경제 전쟁에서 무한대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신경제의 주역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열정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기술을 상업화하고 돈을 버는 산업으로 일구어 낸 원동력은 벤처캐피털의 초기투자 덕분이다. 예를 들면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오라클, 애플, 시스코는 시케아캐피털, 인텔은 아서 룩, 컴팩은 클라이너 퍼킨스, 썬, 마이크로 시스템은 코필드 바이어스 등 벤처캐피털과 함께 자금은 물론 인력확보와 마케팅 등 기업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동반자로 같이 커왔다. 그들은 실패가 있었다는 이유로 좌절하지 않았고 성공을 향한 열정으로 신경제의 우물을 팠다. 한국경제의 주역들이 오너십과 그룹 체제로 오늘의 신산업군을 만들어 낸 역할을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이 해준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벤처캐피털은 신산업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불황은 신산업 창출의 원동력이다. 살아 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기술혁신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 잉태된 기술혁신의 의지는 정보기술(IT), 바이오산업(BT), 나노기술(NT) 등 신기술과 디지털 컨버전스의 국제표준이 결정될 2~3년 후 엄청난 먹거리를 우리 경제에 제공해 줄 것이다. 과거의 오너들이 했고 그룹체제가 영위했던 순기능들을 이제 벤처캐피털이 대신함으로써 재가동 되어야 할 때다.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산업 제조의 선순환 구조가 위기의 우리 경제를 다시 힘차게 돌려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권오용 KTB네트워크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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