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서 젊은 건달 렌턴(이완 맥그리거 분)은 관객들에게 “삶을 선택하라(Choose your life)”라고 말한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 변기 속에 떨어뜨린 코카인 알약 하나를 건져내기 위해 변기 속으로 온 몸을 밀어넣는 충격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한 영화 속에서 렌턴은 희망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일 대신 선택한 것은 헤로인에 중독된 타락한 존재였다. 그는 패스트푸드 코너 계산대에 앉아 있거나 공장에서 기계 감시하는 노동자가 되느니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변기 속에 빠진 알약 하나를 건져내는 추락한 청춘으로 남으려 했다. 하지만 영화 바깥의 세상엔 평범한 노동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영국 작가 조세프 콘라드(1857~1924)의 말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다. 그의 말대로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원하는 무언가를 얻고, 원하는 무언가가 되려 한다.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이 원하는 행복은 점점 노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 속에서 렌턴이 토해내는 세상에 대한 조롱에 고개를 끄덕인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수십년간 노동과 직업 분야를 담당해온 리처드 던킨은 일과 놀이 사이에 큰 구분이 없었던 원시 인류로부터 휴가지에까지 노트북을 싸매 들고 가는현대인의 모습 등 인간 노동의 역사를 더듬고 있다. 제목인 ‘피 땀 눈물’은 산업시대의 노동자의 희생과 고통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온 노동의 역사를 서술한 이 책은 그저 땀과 피로 얼룩진 노동의 역사를 뽑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 수렵채집 사회의 노동, 축복이면서 동시에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의 전주곡인 산업혁명, 도무지 기업윤리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퀘이커 교도들의 성공적인 기업 문화, 막스베버ㆍ피터 드러커ㆍ엘튼 메이오의 이론 등 그가 풀어 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노동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질문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왜…,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는가?” 그는 우리 앞에 놓여진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유용한지 숙고해 보라고 주문한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 엄청난 기술 혁신, 경영 이론의 발전으로 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일이 행복한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사회가 됐다. 하지만 현대인은 노동 속에 담겨진 진정한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농업혁명ㆍ산업혁명ㆍ인터넷혁명 등 세 차례의 거대한 노동역사의 변화를 거치면서 뿌리내린 ‘노동은 삶과 별개’라는 낡은 생각 탓이다. 던킨은 시계 태엽처럼 돌아가는 노동의 쳇바퀴에서 잠시 한발을 떼고 근원적 질문을 던져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용주들과 개인들이 (일과 놀이가 분리돼 있다는) 이 같은 태도들에 대해 더 숙고할 준비가 돼 있다면 일과 여가는 미래의 새로운 근무 유형 속에서 다시 한번 섞일 수 있다”는 낙관적인 희망을 던진다. 결국 “삶을 선택하라”는 렌턴의 말이 던킨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 일치하는 노동을 선택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인류 노동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이 책의 양념 거리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퀘이커교도들이 오히려 한때 필라델피아 부유층 중 4분의 3을 차지했다는 이야기, 영화와는 조금 다른 ‘콰이강의 다리’ 지휘관이었던 영국 중령 필립 투시의 노동 윤리, 1세기 중엽 로마의 농업 작가 콜루멜라의 ‘소박한 삶에 대하여’ 속에 나오는 독특한 노예경영 이론 등은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의 지루함을 없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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