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협상이 막판에 미측의 쌀 개방 요구로 ‘협상 결렬 불사’ 등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만에 하나 협상이 깨질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국 정부간 협상은 오는 4월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지만 무역촉진권한(TPA)이 없는 미측과의 협상은 최종타결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어 이번 협상 결렬은 곧 한미 FTA의 파국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미 FTA 협상이 실패할 경우 양국 관계 악화 등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서는 찬반 양 진영의 진단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이번 협상 결렬은 곧 한미 FTA 파국=31일 오전7시로 못 박힌 협상 시한은 TPA법에 따른 것으로 최종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양국 정부간 협상은 4월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통상협상의 권한이 의회에 있기 때문에 TPA를 의회가 회수하면 최종 타결은 장기화하면서 결국 협상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4월 이후 정부간에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의회가 협상 결과에 불만족스러우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사실상 협상에 간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국 정부간 FTA 협상에서 쌀 개방이 제외되더라도 쌀과 이해관계가 깊은 미 캘리포니아주 출신 의원들이 다시 한국의 쌀 개방을 요구하며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요구들이 미국의 각 주(州)에서 쏟아지면 양국간 FTA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협상에서 타결이 안 되면 TPA가 사라진 미 정부와 어려운 협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협정문이 미 의회에서 대폭 수정될 수 있어 협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단, 한 차례지만 TPA가 없는 상태에서 요르단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요르단보다 훨씬 커 한미간 대립쟁점이 많은 만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FTA 실패, 후유증 ‘크다’ 대 ‘작다’ 엇갈려=이번 협상이 결렬돼 14개월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끝나면 후유증이 “막대할 것”이라는 예상과 “별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 등 한미 FTA 체결에 적극적인 측은 협상 실패가 국익에 상당한 타결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한미 FTA 체결은 안보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FTA 체결을 기대하다 무산되면 국제신인도 등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FTA 협상이 실패하면 한미간 관계에 틈이 커질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FTA 반대 진영은 협상 결렬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의 FTA 협상이 사실상 무산된 말레이시아ㆍ태국ㆍ아랍에미리트연합(UAE)ㆍ스위스 등의 예를 들며 국가간 협상 중단은 흔히 있는 일이고 불이익도 없었다는 것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일 FTA도 지난 2004년 말 중단됐으나 우리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없다”며 “협상은 일종의 흥정인데 조건이 맞지 않는데도 무조건 체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실패의 후폭풍에 대한 기상전망은 제 각각이지만 미국이 최근 잇따른 FTA 대상국들과의 협상 실패로 정치적 압박이 큰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영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까지 잃으면 미측이 상당한 허탈감을 겪을 수밖에 없어 쌀 문제로 판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우리 정부만큼이나 협상이 결렬될 경우 후폭풍에 휘말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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