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가 보낸 ‘비둘기’가 살얼음판이던 외환시장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하원 청문회에서 금리인상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소식에 6원30전 급락한 951원50전으로 개장한 뒤 낙폭을 키우며 장중 950원 아래까지 미끄러졌다. 원ㆍ달러 환율은 오전 한때 949원60전까지 떨어졌는데 장중 기준이라도 환율이 하루에 7원 이상 급락한 것은 지난 6월30일 이후 20여일 만이다. ‘금리인상 중단’이라는 온건한(비둘기식) 발언이 서울시장을 휘저어놓은 셈이다. 환율은 오후 들어 낙폭을 다소 만회하면서 전날보다 5원90전 하락한 951원90전에 마감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버냉키의 발언으로 휘청거린 이날 시장의 모습이 최근 외환시장의 ‘럭비공 장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동발 전운과 북한의 미사일 파문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파업사태와 콜금리 결정을 둘러싼 고위층간의 힘겨루기 등 불확실한 요인들이 어우러진 상황에서 버냉키가 또다시 다른 각도의 발언, 즉 긴축을 시사하는 ‘매파적 발언’을 꺼낼 경우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환율도 특정 방향으로 쏠리기보다 극심한 눈치보기 속에서 박스권 장세를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 부장은 “버냉키 발언 이후 일본 금리인상에 대한 관점도 흔들리고 있다”며 “940원대 중반에서 960원까지를 박스권으로 오르내림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 파업 등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버냉키의 발언은 ‘금리인상 중단’이라는 관점과 ‘미국 경제 둔화’라는 양면적 모습으로 우리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며 “그의 발언이 또다시 바뀔 경우 외환시장의 출렁거림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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