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1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찾아간 사우스파스의 대규모 가스처리시설 건설현장. 현장을 둘러싼 산 쪽의 대형 굴뚝 수십개에서 가스 찌꺼기를 태우는 불기둥이 타오르며 매연을 내뿜는 바람에 현장의 뜨거운 공기가 다소 메케하다. 철조망으로 철저히 차단된 이곳은 105㎞쯤 떨어진 페르시아만 심해에서 천연가스를 뽑아 올려 파이프로 이동시킨 뒤 LNG와 LPG, 가솔린ㆍ납사 등을 만드는 곳이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의 가스전을 공유하는 카타르가 천연가스를 대거 뽑아 가자 서둘러 가스처리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자원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의 1~5구간 가스처리시설 공사는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등이 완료했고, 현재는 대림과 일본 도요ㆍ제이지씨, 이란 이드로조인트벤처가 15억달러 이상 규모의 6~8구간 시설을, GS건설이 2개 현지업체와 컨소시엄으로 16억달러 규모의 9~10구간 시설 및 해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사는 여느 한국 업체들처럼 EPC(상세설계ㆍ자재구매ㆍ현지 하청시공) 방식으로 하는데 규모가 각각 36홀 골프장 크기만큼 대단하다. 발주처인 PPL의 엔싸이엔 현장 사이트 매니저는 “대림이나 GS 등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프로의식을 갖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렇지만 애로도 적지않다. 송백근 대림 현장소장은 “자재ㆍ인건비가 급등하고, 일부 이란업체들의 책임감 부족으로 종종 애가 탄다”고 말했다. 또한 이란이 15~18구간의 경우 자국 업체에만 입찰자격을 부여하는 점, 미국의 경제제재 확대로 인해 국제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기가 어려워지는 점 등은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홍성덕 대림 테헤란지점장은 “대림은 지난 88년 이라크의 캉간 가스ㆍ정유공장 폭격으로 노동자 13명이 숨졌을 때도 공사를 강행하는 등 30년간 이란에서 사업을 했다”며 “올 들어서도 7억달러 규모의 에스파한 정유공장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등 수주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이병인 GS건설 현장소장은 “GS는 중동을 비롯, 여러 나라로 사업지역이 다각화돼 있다”며 “앞으로 카타르에서 일본과의 고부가가치 LNG플랜트 시설공사(50억달러 이상)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무익 GS건설 전무는 “이 기술은 현재는 미국ㆍ유럽ㆍ일본 등의 5개 회사만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소개했다. 야마우치 도요 프로젝트 매니저도 “제재가 풀릴 조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란 이외의 지역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웨이트의 원유저장시설 현대화 제2공사현장. 이곳은 강한 히터를 틀어놓은 것과 흡사한 날씨에 흙ㆍ모래가 뒤섞인 먼지바람이 쉴 새 없이 얼굴을 때려 눈도 따갑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인도인을 비롯, 10여개국의 노동자들은 보안경을 끼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은 SK건설이 총 12억달러에 수주해 노후 원유 저장시설(GC)을 전면 개ㆍ보수하거나 증설하고 있는 11곳 중 한 곳이다. 지하에 각종 전기선과 배관이 밀집된 상황에서 파이프를 모두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비롯해 위험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자칫 불꽃이라도 튀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장소장인 이은교 SK건설 상무는 “11곳 중 10곳의 현대화 작업은 기존 시설을 가동하며 진행해야 돼 정말 아슬아슬하다”며 “매일 새벽 영어ㆍ아랍어ㆍ인도어 등으로 안전교육을 철저히 실시해 다행히 큰 사고는 없다”고 말했다. SK는 최근에는 GC-24의 현대화 작업을 6억2,000만달러에 수주하기도 했다. 슈아이바 공단(쿠웨이트시티 남쪽 40㎞)의 SK건설 석유화학원료공장 건설현장도 푹푹 찌는 더위에 강한 흙ㆍ모래 먼지 바람이 시야를 덮었다. 이곳은 납사를 가공해 섬유ㆍ플라스틱 원료를 만들게 되는데 토목ㆍ배관공사가 한창이다. 이색적인 것은 SK의 컨소시엄인 이탈리아 테크니몽의 하청사가 고용한 노동자 중에 북한인들이 수백명이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70~80년대 중동에서 비지땀을 흘렸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장소장인 이병증 전문위원은 “미국ㆍ영국ㆍ프랑스는 발주처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미련 없이 철수하지만, 우리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끝까지 마무리해 신뢰를 받고 있다”며 SK가 쿠웨이트에서 강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경진 SK건설 전무는 “지난해 말 현지 원유정제시설공사 입찰에서 SK, GS, 현대ㆍ대림 등이 구간별로 나눠 로이스트(최저가 써낸 업체)가 됐지만 ‘예산규모 초과’로 인해 9월로 입찰이 연기됐다”며 현지의 견제도 만만치 않음을 시사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제벨알리 자유무역지대. 여러 개의 관문을 통과해 도착한 이 곳도 찌는 듯한 더위와 흙먼지가 날리기는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다. 현대건설이 두바이에 부족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에 한창이다. 두바이는 중동은 물론 서유럽과 북아프리카ㆍ서남아시아 자본이 대거 유입돼 국토 전체가 공사판이 되면서 전기가 부족한 상태다. 두바이로서는 현대가 빨리 발전소를 짓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는 형국이다. 현장소장인 송근호 상무는 “현지에서 요구하는 스펙(기준)이 까다로워 인근지역에서 발전소를 짓는 일본 도시바도 예정보다 1년 반이 넘도록 아직 완공을 못하고 있다”며 “현대는 예정대로 내년 상반기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는 또한 이 곳에서 중동의 물류 중심지인 두바이가 대거 확장에 나선 컨테이너항만 조성공사 1단계 공사도 절반가량 마친 상태다. 현장소장인 남선중 전무는 “현대가 1단계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 나올 예정인 2~14단계 공사수주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美제재 풀리면 기회 더 많아질것" [인터뷰] 야쿱 다쉬디 쿠웨이트 KOC 정유시설현대화팀 리더 "중국과 인도의 성장세에 힘입어 앞으로 5년간은 고유가가 지속될 것입니다. 그 전에 쿠웨이트는 원유저장ㆍ정제ㆍ석유화학 원료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야쿱 다시디 쿠웨이트 KOC 정유시설현대화팀 리더는 "SK 등 한국업체를 비롯한 다수의 국내외 업체들이 플랜트 공사에 적극 나서줘 쿠웨이트로서는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쿠웨이트의 노후화된 정유시설 현대화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며 집무실에 제주도 초가집 등 한국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걸어 놓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한국 업체들은 공기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오는 9월 재입찰하는 120억달러짜리 쿠웨이트 원유정제시설 공사의 커미티(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그는 "한국 업체들이 지난해 말 구간별로 로이스트가 됐지만 이번에 기득권은 없다"며 "입찰도 설계시공입찰방식(Lump Sum)이 아닌 실비정산방식(Cost Plus Fee)으로 바뀌어 유럽ㆍ일본ㆍ미국업체가 꽤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광본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